 (사진: 김남숙 - 인동초 열매/9월)
 (사진: 김남숙 - 인동초 꽃/9월)
 (사진: 김남숙 - 인동초 꽃/6월)
 (사진: 김남숙 - 9월의 하늘)
인동초
- 김남숙(숲해설가 &시인) -
오늘은 날이 참 맑았습니다.
태풍 나비가 살짝 지나간 자리를 마냥 푸르른 하늘은
모든 지난한 것들을 다 포용하겠다는 듯 높고도 넓어져
하얀 뭉게구름과 함께 밝은 날.
구석기 움집이 있는 암사동 유적지엔
담쟁이덩굴이 다닥다닥 달린 열매를 늘어뜨리고 있는데
초여름에 핀 인동초 덩굴도 그에 뒤질세라 열매를 달고 서로 엉켜 있더군요.
여름이 다 간 가을에도
노란 꽃과 하얀 꽃을 열매가 익어가는 덩굴에 피워내고 있는 인동초.
여름 꽃이라고 꼭 여름에만 피는 것은 아닌가봅니다.
사람에 따라 철이 늦게 드는 이도 있는 것처럼.
인동초 꽃은 며느리밥풀 꽃 내민 혓바닥 보다 더 기인 혀를
앞으로 쭉 내밀고 핍니다. "나는 밥알을 삼키지 않았노라"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며느리밥풀 꽃과 달리 혀 안쪽에서 길게 뻗어져 나온 꽃술을 하늘을 향해 기일게 뻗고 있으니 이 꽃 또한 가난과 설움에 겨운 옛이야길 하고픈 것 아닌가 하면서 겨운 고통을 이겨낸 인내의 세월을 이해하려 노력해 봅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인동초의 줄기에는
초록 잎에 달린 보송보송한 솜털이 빛을 발하고
또한 마디마디의 잎겨드랑이에 꽃을 피워냈으니
피어난 꽃만큼은 아니어도 드문드문 달린 초록 잎 사이로
까맣게 익은 열매가 반짝반짝 윤기 있게 빛나는 겨울이면
무심코 지나는 발길이라도 잠시 멈추게 될 것입니다.
어린 시절, 인동초 꽃을 뽑아서 꿀을 빨아 먹었습니다. 그윽한 향기와 함께 꽃잎마저 씹어 먹으면 그 상큼함과 단맛이 그야말로 꿀맛이었지요.
오늘도 한 꽃잎을 뽑아 먹어 보니 꿀이 제법 들어 있더군요. 꽃이 기다란 관으로 되어 있는 통꽃이어서 쭉 뽑으면 암술은 나무에 남고 꽃만 뽑힙니다. 꿀이 많으니 "밀보등"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덩굴이 왼쪽으로 감겨 올라간다 하여 "좌전등" 귀신을 다스린다 하여 "통령초"라고도 불린답니다.
또한, 한 가지에 금꽃과 은꽃이 피어서 "금은화"라고도 불립니다.
이 또한 서글픈 전설을 갖고 있답니다.
전설을 요약하면
옛날 자식이 없는 부부가 있어 천지신명께 지성으로 빌어 딸 쌍둥이를 낳았답니다. 귀하게 얻은 딸의 이름을 하나는 금화, 또 하나는 은화라 지었는데 예쁘게 잘 자랐고, 사이 또한 좋아서 한 날에 태어났으니 한 날에 죽자고 약속하였더랍니다.
열여섯 살이 되어 혼담이 오갔으나 서로 떨어져 살 수 없다면서 모두 거절을 하였는데 어느 날 언니 금화가 병에 걸렸고,
언니를 극진히 돌보던 동생 은화마저 앓아눕게 되었답니다.
죽음을 앞 둔 자매는 "우리가 죽으면 반드시 약초가 되어 우리처럼 죽는 이들이 없게 하자"고 맹세하고는 한 날 한시에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 이듬해 자매의 무덤가에서 한 줄기 여린 덩굴이 자라더니 흰 꽃과 노란 꽃이 피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식물이 금화와 은화가 꽃으로 변한 것이라 하여 금은화란 이름을 붙여 주었답니다.
이렇게 금은화라 불리는 인동초 꽃은 금꽃과 은꽃이 따로 피는 것은 아니고요. 처음엔 하얗게 피었다가 점차 노랗게 변해가면서 시들어 가는 것이에요.
사진에서 마주난 잎 한 가운데서 올라 온 두 개의 꽃이 보이지요? 그렇게 같이 나란히 쌍둥이처럼 꽃을 피워내도 서로 지는 시기가 달라서 하나는 하얀색을 띄고 하나는 노란색을 띄는 것이 신기합니다.
열매를 맺을 때도 하나는 좀 빨리 익고 하나는 더디 익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한 개의 꽃만이 열매를 맺어 덩그마니 홀로 달려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한 자리에서 같은 말을 들어도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차이가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보이지 않는 미묘한 차이 있음과 이해하는 정도가 각기 다름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동초~! 겨울에도 반상록수로 남아 우리들에게 인고의 세월을 견뎌 성공(?)에 이른 어느 정치인을 연상하게도 하는 꽃.
인(忍) 동(冬)이란 이름을 가졌지만 인동 꽃은 여름 꽃입니다. 풀(草)이라는 글자가 붙었으나 풀이 아닌 덩굴성 목본이지요.
하늘이 높고 푸른 가을, 개나리 나무와 담쟁이덩굴과 어우러져 금꽃과 은꽃을 피워냈던 자리에서 인동초의 초록 열매를 찾아보세요.
가을이 여물어 가면, 그래서 겨울이 다가오면 초록 열매들은 까맣게 익어갈 겁니다. 날이 가고 계절이 깊어갈수록 초록 열매들이 까맣게 익어 가면 초봄에 피운 우리의 꿈, 초여름에 피운 꿈, 날마다 피워낸 우리들의 꿈도 하나 둘 영글어가겠지요?
- 김남숙(20050908) -
 (사진: 김남숙 - 인동초 꽃/6월)
 (사진: 김남숙 - 인동초 꽃/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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