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망초꽃
개망초 꽃 - 김남숙 숲해설가 | ||
내용 |
개망초 꽃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개망초 꽃입니다. 산 초입에, 들에, 골목에, 금나간 시멘트 벽 사이에, 등하교 길에 흙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피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많이 피어있는 꽃이지요. 고속도로 진입로 잘 다듬어진 잔디밭, 민들레가 피었다 지고 난 자리에 하얗게 피어서 마치 안개꽃무리 같기도 합니다. 산허리 빈 땅에 무리지어 핀 개망초 꽃은 누가 심지 않아도, 누가 가꾸지 않아도 5월부터 북아메리카가 고향인 개망초는 번식력이 강해서 이미 토박이 식물들을 밀어내고 전국에 퍼져 귀화식물이 되었습니다. 귀화식물이란 마치 본래부터 우리나라에 있었던 꽃처럼 되었다는 뜻이랍니다. 일손이 모자라는 농촌에 무서운 번식력으로 퍼지니 뽑고 또 뽑아내도 끝이 없이 자라나는 풀이 마치 망할 놈의 풀이라는 망초랑 닮아서 개망초 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꽃을 보세요. 얼마나 예쁜가요? 꽃송이 가장자리에 하얗게 돌려 피어있는 꽃잎, 그 하얀 꽃잎 가운데 촘촘히 박혀 핀 노란 통꽃~! 꽃 핀 모양이 마치 계란 프라이 같아서 계란 꽃이라 부르기도 한답니다. 남도 지역에서는 풍년초 라고도 부릅니다. 이 개망초는 두 해살이 풀로 민들레 잎처럼 땅바닥에 쫙 펼쳐진 잎으로 개망초의 어린 순은 삶아서 잠시 우려낸 다음 파, 마늘, 소금, 간장 넣어 무쳐 놓으면 아이들도 시금치 보다 더 잘 먹습니다. 좀 세어진 순은 삶아서 말렸다가 묵나물로 먹어도 좋을 듯싶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적, 아직 흙속의 얼음이 녹지 않은 이른 봄이라도 소쿠리(대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호미를 들고 빈 밭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이 개망초를 캤지요. 로제트형의 이 개망초를 흙속에서 뿌리 채 캐어내는 즐거움도 컸습니다. 어느 정도 소쿠리에 수북하게 담기면 냇가로 가서 흐르는 물에 흙을 털어 씻어내고 풀에 스며든 물이 빠지면 소쿠리를 옆구리에 끼고 집으로 왔어요. 캐 온 풀을 끓고 있는 쇠죽솥에 넣어 지푸라기를 썰어 만든 여물과 섞어 뒤적뒤적 하면 그 구수한 냄새가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쇠죽을 끓여서 외양간 소 구시(여물통)에 퍼다 주면 소코뚜레 주변엔 찬 기온에 부딪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김에 맺힌 이슬이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이던 모습도 선합니다. 되새김질하여 맛있게 먹어대던 소의 눈망울은 또 얼마나 크고 맑고 예뻤는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풀을 뽑으러 나가는 봄날은 기분 좋았습니다. 그 때의 제 나이라야 열 살 즈음이었지요. 소먹일 풀 캐는 일은 제게 있어 일이라기보다는 즐거운 놀이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봄이 되면 풀 캐고 나물 캐던 일이 생각나서 꼭 한 번은 꿈에서라도 나물 캐는 꿈을 꾸어야 봄맞이가 되는 것 같습니다. 개망초 꽃, 사실 요즘은 이렇게 흔히 볼 수 있는 꽃이지만 제가 어렸을 적에는 이렇게 많이 볼 수 있는 꽃이 아니었어요. 왜냐면요, 누가 이리 자라서 꽃이 필 때까지 놔두었겠어요? 논두렁 밭두렁이며 저수지 둔덕이며 모든 풀이란 풀은 다 베어다가 소를 먹였으니 어느 사이 자라서 꽃이 필 새나 있었겠습니까? 지금처럼 비료가 흔한 것도 아니었으니 너무 세어서 소를 먹일 수 없는 풀은 베어다 숙성을 시켜서 퇴비로 썼거든요. 초등학교 시절에도 퇴비증산 운동의 일환으로 학교에 풀을 베어 등에 지고, 머리에 이어 날라다 할당된 양을 내야만 했었거든요. 그래서 꽃이란 사람의 손길을 타기 힘든 험난한 계곡이나 위험한 언덕에서나 피는 줄 알았나 봅니다. 저의 초등학교 시절에 꽃그림 그릴 때는 바위 틈새나 벼랑 끝에 그리곤 했으니까요. 지금은 꽃이 참 지천에 많습니다. 이렇게 많은 꽃을 볼 수 있게 된 것도 나라가 발전하여 생겨난 행복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 김남숙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