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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부처님의 머리 모양
서울문화
2006. 6. 24. 09:26
부처님 머리모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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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발’은 삭발을 거룩하게 표현하는 방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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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도 마찬가지다. 매일 감고 빗고 쓸고 손질하는 게 머리카락이다. 하루에도 수 십 번 머리를 쓸어 넘기고, 그것도 모자라 거울을 보며 다듬는다. 화장실에서, 사무실에서, 전철 안에서 모두가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퍼머한 머리, 커트한 머리, 물결처럼 웨이브한 머리 등 저마다 자기를 돋보이게 하려고 머리 손질을 한다. 머리카락을 노랗게, 빨갛게 물들이도 한다. 머리카락이 빠지면 빠진다고 야단이다. 머리카락은 이처럼 현대인들의 ‘관심과 신경의 대상’이자, 사람들을 괴롭히는 근원(根源) 중 하나다. 그래서 불교는 머리카락을 번뇌의 상징으로 여긴다. 마음속 번뇌가 머리카락으로 드러난다고 파악한다. 매일 자라는 머리카락은 매일 자라는 번뇌를 의미한다. 깎아도 솟아오르는 머리카락은 끝끝내 돋아나는 삼독(貪嗔痴)에 다름 아니다.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라 부르고, 출가 할 때 모두 깎아 버린다. 부처님도 출가하면서 먼저 머리카락을 잘랐다. 이런 점에서 삭발식은 바로 출가의식이기도 하다. 머리를 자른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버린다는 점에서 ‘욕망의 단절’을 나타낸다. 그럼에도 현존하는 불상들은 머리카락을 갖고 있다. 왜 그럴까. 간다라와 마투라에서 불상이 처음 조성되던 기원후 1세기경, 양 지역 불상 사이에는 형식상 차이가 있었다. 얼굴은 동안(童顔)이고, 팔 다리는 건강하게, 다리는 결가부좌한 채, 몸을 감싼 옷은 속이 훤히 비치게 표현하는 것이 초기 마투라식이라면, 간다라에서 창안된 불상은 커다란 천으로 살이 보이지 않게 몸을 감싸고 두르며, 아무런 장신구도 걸치지 않는 차림이었다. 차이에도 불구하고, 간다라나 마투라 불상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출가하면 삭발하는 스님들과 달리, ‘긴 머리카락을 위로 올려 상투처럼 정수리 부근에서 묶은 것’이다. 이는 출가 당시 머리를 깎았다는 경전상의 기록과도 다르다. 왜 불상은 머리카락이 있는 모습일까. ‘탐욕을 끊는다’는 의미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출가의 상징인 삭발을 왜 불상들은 하지 않고 있을까. 간다라와 마투라 두 지역 불상에는 ‘32상(相) 80종호(種好)’라는 특상관(特相觀)이 적용됐다. ‘32상 80종호’는 부처님이 구비한 관상(觀相)상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열거한 것인데, 32상은 대상(大相)이라 하여 기본적 특상(特相)이고, 80종호는 소상(小相)이라 부르기도 한다. 부처님 몸에 보이는 이런 특징은 〈중아함경〉 권11, 〈과거현재인과경〉 권1, 〈불본행집경〉 권9, 〈방광대장엄경〉 권3, 〈대승백복상경〉, 〈대승백복장엄상경〉 등에 구체적으로 정리돼 있다. 〈중아함경〉 권11 ‘왕상응품’에는 28상이 열거돼 있는데, 27번째 특징으로 머리카락을 들고 있다. “정수리에 육계가 있어 둥글고 가지런하며 머리칼은 소라처럼 오른쪽으로 돌아 오른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반면 〈방광대장엄경〉 권3에는 “정수리에 육계가 있다, 소라 같은 머리칼이 오른쪽으로 돌아 오르고 그 빛은 검푸르다”고 돼 있다. 80종호에 대해서도 〈방광대장엄경〉 권3은 “머리칼이 아름답고 검다, 머리칼이 가늘고 부드럽다, 머리칼이 어지럽지 않다, 머리칼이 향기롭고 깨끗하다, 머리칼에 다섯 개의 만(卍)자가 있다, 머리칼이 빛나고 소라처럼 돌아 오른다, 머리칼에 난다월다 길륜어의 모양이 있다”고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대승백복상경〉이나 〈대승백복장엄상경〉 역시 80종호와 관련 “머리칼이 길고 좋다, 머리칼이 어지럽지 않다, 머리칼이 오른쪽으로 돈다, 머리칼이 검푸르다”고 적고있다. 수행자의 출가 당시 삭발은 ‘번뇌 단절’ 의미 간다라 양식 불상은 ‘웨이브 머리카락’ 특징
간송미술관 최완수 실장의 〈불상연구〉(지식산업사. 1984)에 따르면, 원래 인도문화권의 남자들은 머리카락을 위로 거둬 모아 상투를 틀고, 그것을 그루터기로 삼아 터번을 둘렀다. 더위나 모래바람으로부터 머리카락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인도는 계급사회, 자연히 신분의 차이를 나타내려고 높은 신분일수록 상투와 터번에 많은 금은보배를 장식했고, 이러다 보니 상투가 더 높아졌다. 초기 불상조각가들은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 머리카락을 정수리 부근에서 묶어 상투를 - 후일 육계란 명칭으로 확정된다 - 만든 형태의 불상을 조성했다. 처음에는 상투 끈으로 머리카락을 묶었으나, 불상 양식이 점차 진전되면서 끈은 사라지고 상투만 표현됐다. 상투를 묶어주는 끈이 사라지던 그 즈음은 쿠산왕조의 호불왕(好佛王) 카니쉬카 대제(기원후 2세기 전반)가 통치하던 때고, 불탑을 제치고 불상이 주된 예배대상으로 자리잡은 시기라 한다. 한편 유명한 인도미술사가 쿠마라스와미 교수는 육계(정수리 부분에 솟은 것. 살상투)의 산스크리트 어원(語源)인 ‘우스니샤 시르샤(usnsa-irsa)’는 본래 ‘모자를 높이 쓸 수 있는 머리나 두발’ 혹은 ‘모자 장식을 높이 붙일 수 있는 머리나 두발’이란 뜻이라며, 이것이 기원후 2세기경 ‘육계’로 의미가 변하는데, 이는 32상에 대한 경전해석상의 변화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쿠마라스와미의 주장에 반론이 있었지만 경전이 한역(漢譯)되던 3세기 이후에는, ‘우스니샤 시르샤’의 의미가 ‘육계’로 바뀐 것을 반영하듯, 모든 경전에는 ‘육계’로 나온다고 최완수 실장은 지적한다. 물론 당나라 현장스님의 한역 이후 ‘우스니샤 시르샤’의 음역(音譯)인 ‘오슬니사(烏瑟沙)’가 쓰이기도 했다. 혜림스님(737~820)이 지은 〈일체경음의〉 권4 ‘오슬니사’조에는 “산스크리트어로, 부처님의 정수리를 일컫는 이름”이라고 적혀있다. <대방편불보은경〉 권7, 〈현겁경〉 권3, 〈우바이정행법문경〉 권 상.하, 〈불설무상의경〉 권 하 등에는 “육계상이 수많은 선행(善行)의 결과로 나타난 상서로운 것”으로 나온다. 결국 대승불교 흥기와 함께 육계는 부처님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어찌됐던, 불상이 태어난 후 지금까지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와 함께 부처님 머리카락은, 출가 당시 잘랐다는 기록과 달리, 항상 조각됐다. 물결치는 듯한 파상모발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나발 모양으로 변했지만, 석굴암 부처님에서 볼수 있듯, 전 세계 모든 부처님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머리카락은 부처님의 지혜를 의미하는 상징물로 조각됐을 따름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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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불교예술여행
글쓴이 : 산지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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