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방/일반문화 자료실

판소리 세미나

서울문화 2008. 3. 14. 22:07

우리얼 1박 2일의 답사에서 피해갈 수 없는 세미나 시간이다. 황태님의 친필로 세미나 소제목들이 뛰엄뛰엄 적혀 있는 정말 독특한(?) 자료집을 받아 들었다. 우리는 세미나를 들으며 그 빈 공간을 채워나가야 했다. 판소리의 정의부터 시작된 세미나는 장장 1시간 반 가량 진행되었다. 여기에 간략히 세미나 내용을 정리해본다.

우선, 판소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흥보가, 수궁가, 심청가, 춘향가, 적벽가의다섯마당 외에 일곱마당(변강쇠타령, 옹고집타령, 무숙이타령, 강릉매화타령, 장끼타령, 배비장타령, 가짜신선타령)이 더 해져 애초에는 총 열두 마당이 전해져 왔었다. 신재효사설에는 변강쇠가를 포함하여 총 여섯 마당의 사설이 정리되어 있다. 실제로 우리는 <춘향전> 또는 <심청전>이라는 소설의 내용을 알고는 있지만 판소리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황태님은 강조한다. 판소리의 일반적 정의는 “서사적 이야기를 연작해서 소리하는 연행물”, 구성적 측면의 정의라 하면 판소리는 “더늠의 적층예술”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제비노정기, 흥부 박 타는 대목.. 등 창자의 더늠들이 쌓여서 한 판이 만들어지고 이것을 바디라 하는데 구성적 측면의 정의는 이를 설명하고 있는 정의라 하겠다.
        
판소리는 창자, 고수, 관객이 서로 개입해 들어가면서 삼위일체가 되는 공연예술이며, 따라서 판소리의 삼요소는 이 세가지가 된다.

이제 판소리의 기원에 대해서 알아보자. 판소리는 지금으로부터 한 200여 년 전, 18c 후반, 그러니까 숙종 때 이미 불려졌다 추정한다. 판소리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1) 무가기원설, 2) 육자배기토리설, 3) 광대기원설로 설명된다.

먼저 무가기원설은 판소리의 박자가 무가의 기본장단과 유사한 데서 비롯되었다. 굿판의 박수무당이 제단을 향해 있다가 어느 순간 청중을 향해 돌아 서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설득하는 상황을 연출하게 되었을 것을 가정해 본다. 실제로 판소리의 창자 중에는 무가 출신들이 많이 있다. 18세기 말에 활동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하한담, 최선달, 우춘대 등 또한 무부들의 조직에서 배출되었다.

육자배기토리설은 남도 민요인 육자배기와 판소리의 중심선율을 이루는 계면조가 동일한 구성음과 악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제기된 설이다. 즉, 육자배기의 42(6박)으로부터 판소리의 33(6박)이 비롯되었을 가능성과 그 박자가 매우 느려서 한스럽고 서정적인 느낌이 강해 서편제의 주요 정서인 계면조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광대기원설은 광대들이 서로 재주를 겨루다 음악에 설화를 엮어 노래를 부르던 것에서 판소리가 시작되었다는 설이다. 예를 들어, 줄을 타면서 부르던 소리인 승도창은 판소리가 발생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전승이 끊어져 자세히 알 수 없다.

이제, 판소리가 문헌에 나타난 기록을 살펴본다.
판소리에 관한 최초의 문헌은 1754년(영조 30년) 만화재 유진한이 쓴 <가사 춘향가 200구>이다. 조선 순조 때 송만재라는 선비가 쓴 <관우회>라는 글에서는 창우집단의 판놀음에 대해 자세히 씌어져 있고, 권삼득과 모흥갑의 이름이 나온다. 판소리가 하나의 민속음악으로서의 내용과 형식을 갖추고 완성의 단계에 이른 시기는 대체로 숙종으로부터 영조까지의 시기이며, 판소리의 전성시기는 대개 정조로부터 철종시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다음 판소리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의 풀이이다.

사설
판소리 사설은 일반적으로 판소리 속의 음악적 요소를 제외한 사설의 의미로 이해될 수 있으나, 특정인이 구전되던 판소리를 의도적으로 개작하여 기록한 희곡 작품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판소리가 음악을 통하여 표현되는 극적 양식이라면, 판소리 사설은 歌詞로 씌어지는 희곡적 양식이라 하겠다. 판소리는 사설을 중심으로 구성되는데 광대의 구연방식, 발림의 내용, 장단•악조의 배합이 모두 사설의 내용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데 판소리는 연행에 의해 완성되는 현장예술이기에 사설치레는 구연이라는 연행방식과 관중을 직접 상대하는 현장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했으며, 이 때문에 판소리 사설은 구성•주제•문체 등 여러 측면에서 기록 서사물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들을 드러낸다.

이면
판소리에서 어느 대목의 사설 내용이나 철학적 바탕.
'이면을 잘 그렸다'는 말은 어느 대목의 내용이나 철학적 바탕을 판소리 음악으로 잘 표현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내용적 측면과 감각적 측면이 잘 조화되었다는 말이다. 이면은 창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으며 유파에 따라 서로 다른 음악어법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따라서 고정된 이면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리
판소리의 내용을 '창'이 아닌 말로 표현하는 것.
아니리는 사건의 변화, 시간의 경과, 작중 인물의 대화, 주인공의 심리묘사, 작중인물의 독백 등을 전달하고 창자에게 휴식하는 기회를 주는 기능을 갖고 있다.

추임새
판소리를 부를 때 고수나 청중이 흥을 돋구기 위해서 발하는 감탄사.
'좋다', '얼씨구', '좋지', '으이', '얼쑤' '하먼'과 같은 감탄사를 발하므로서 흥을 돋구고 다음 구절을 이끌어내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판소리에 대한 즉석 비평이 되기도 하고, 고수가 북가락 대신 창의 빈틈을 메꾸어주는 구실도 한다. 추임새는 같은 말이라도 장면에 따라 표현방법이 다르고 또 아무데서나 남발해서는 안된다.

발림/너름새
판소리에서 창자의 동작을 이르는 말.
부채를 소도구로 활용하고, 극적 상황에 따라 하는 적당한 동작이나 내용에 따라 몸짓으로 표현하는 연기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발림은 손동작이나 춤동작에 한해 사용하며, 너름새는 연극의 연기에 근접하는 동작까지를 포함한다.

성음(천구성, 수리성)
판소리에서 사용되는 성음들로 서로 대립적인 개념이다. 수리성은 목이 쉰 듯한 껄끄럽고 탁한 소리를 말하며, 천구성은 이와 반대로 애원성이 가미된 맑고 고운 소리를 말한다. 판소리에서는 이 수리성과 천구성을 교체해 가며 대조적으로 사용하므로써 표현영역의 확대와 깊이에 기여한다.

독공
혼자서 소리 공부를 하는 것 또는 배운 소리를 혼자서 익히는 과정.

득음
오랜 공부 끝에 목이 트여서 모든 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상태. 소리꾼으로서 음악적 역량이 완성된 상태, 판소리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성음을 마음대로 변화시켜서 판소리의 이면을 충분히 그릴 수 있는 경지를 가리킨다.

시김새
<삭이다>에서 온 말. 선율을 보다 기교적이며 깊이 있게 표현하는 기법을 말한다.
판소리에서는 창자가 수련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그 가락이 제대로 잘 삭고, 익어서 예술적인 멋을 성취하게 된 상태를 이른다. 따라서 '시김새가 좋다'는 말은 예술적인 멋이 풍부하다는 뜻이다.

장단
긴고 짧은 박의 결합.
판소리의 장단에는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엇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등이 있다.

진양조:
판소리, 산조에 사용되는 장단의 하나. 가장 느린 속도로 연주되는 장단이다. '진'은 전라도에서 '긴'이라는 뜻이다. 3분박 6개를 한 각으로 하며, 24박을 한 장단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중모리:
판소리와 산조 등 민속악에 사용되는 장단 중 하나. 중머리는 중간속도로 치는 장단이라는 뜻이다. 4분음 12박으로 구성된다. 3박을 단위로 각각 기•경•결•해 혹은 춘•하•추•동의 의미를 담고 있다.
중중모리:
판소리와 산조 등 민속악에 사용되는 장단 중 하나. 중모리 장단이 더 빨라져 형성된 장단으로 중모리 장단에 비해 타점이 적어 진다. 8분음 12박으로 구성된다.
엇모리:
판소리, 산조 등의 민속악에 쓰이는 장단의 하나. 8분음 10박으로 구성되며 3분박과 2분박이 교대로 등장하여 절룩거리는 느낌을 준다.
자진모리:
판소리와 산조에 쓰이는 장단의 하나. 중중모리 장단이 더 빨라져서 만들어지는 장단으로 중중모리의 타점이 더욱 생략되어 연주된다. 자진모리는 잦게(빠르게) 몰아간다는 뜻이다.
휘모리:
판소리와 산조에 쓰이는 장단 중 하나. 단모리 혹은 세산조시라고도 한다. 휘몰아치듯 몰아서 치는 장단이라는 뜻이며, 경기무악의 당악장단 그리고 영산회상의 양청도드리 장단과 맥을 함께 한다.


판소리에서 조는 서양 음악에서의 창법적 개념과 선법적 개념의 복합개념이라 할 수 있다.
조에는 계면조, 우조, 평조가 있는데, 계면조는 슬픈 가락, 평조는 화평한 가락, 우조는 씩씩한 가락을 가리키며 평조와 우조를 합쳐 우평조라 부르기도 한다.

더늠
<더 넣다>에서 온 말.
판소리에서 창법상 독창성 있는 대목을 가리키는 말로서, 전승상에 여태까지 없던 것을 더 넣었다는 뜻이다. 더늠도 또한 김창환 더늠, 임방울 더늠 등 그 더늠을 만든 사람의 이름으로 명칭을 삼고 있다. 판소리는 이러한 더늠이 쌓여 이룩된 것이다.

바디
<받다>에서 온 말인 듯, 판소리의 전승되어온 법제, 혹은 어느 전승 계보의 텍스트를 가리킨다. 계보보다는 하위 개념으로 정정열 바디, 김세종 바디, 정재근 바디 등 그 전승 계보를 확립한 사람의 이름을 붙여 부른다.


판소리의 갈래. 법제.

동편제:
판소리 법제의 하나. 섬진강을 경계로 그 동쪽 지역인 남원, 운봉, 구례 등지의 산악지역을 중심으로 불리던 판소리. 우조를 주장하고, 호령조가 많으며, 발성초를 진중하게 하고, 발성 끝은 망치로 내려치는 듯 딱 잘라서 끝낸다. 비교적 속도가 빠르고 높은 음역과 대마디 대장단을 주로 사용하며 기교에 치우치지 않아서 고졸하고 소박한 느낌을 준다. 운봉 태생 송홍록의 법제를 표준으로 하여 박만순, 김세종, 송우룡, 송만갑, 유성준, 김정문, 강도근 등이 그 법통을 이었다.
서편제:
박유전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판소리의 법제. 동편제와 함께 판소리의 양대 법제로 꼽히며 동편제에 비해 소리가 느리고 장식음이 많이 들어가는 등 기교적이다. 섬진강의 서쪽인 보성, 광주, 담양, 나주 등지의 평야지대에서 불리던 소리이다.
중고제:
판소리 법제의 하나. 동편제와 서편제의 중간으로 상하성이 분명한 특성을 나타냄. 경기도 이남과 충청도 일대를 기반으로 염계달과 김성옥의 법제를 많이 계승한 소리이다. 오명창시대의 이동백, 김창룡 등을 끝으로 전승이 단절된 것으로 본다.


이제 시간이 많이 되었다.. 이젠 진짜 소리를 들어보아야 한다..
김연수 선생의 춘향가 중 <음식타령>과 임방울 명창의 춘향가 중 <쑥대머리> 대목을 들었다. 요즘 TV 개그프로그램에서는 이 “쑥대머리”가 한참 유행이던데… 보는 시청자들은 이 유명한 대목을 알고나들 있는 것인지… 밤이 늦어 이렇게 세미나를 정리한다. 막걸리와 회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쑥대머리: 판소리 춘향가 중 한 대목으로 근세 명창 임방울이 불러 더욱 유명해진 소리이다. 중머리 장단에 구슬픈 진계면 창조로 부른다. 쑥대머리는 옥중의 춘향이가 쑥대강이처럼 산발한 머리 형상을 하고 있음을 나타낸 말이다.)

 

 

 

 

'판소리'란 말의 뜻
  

  판소리, 판소리 하지만, 판소리가 무슨 뜻인지, 그리고 판소리를 판소리로 부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는 사람은 정작 많지 않다. 아니 대부분은 판소리라는 말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 마치 우리가 늘 쌀을 먹고 살지만, 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관심이 없는 것처럼. 언어학에서는 특수한 소수의 예를 제외하고는, 어떤 것을 무엇이라고 이름붙이는 특별한 이유나 원칙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기본적인 낱말이 그런 것이며, 나중에 새롭게 이런저런 말조각을 연결해서 만들 때에는 그렇지가 않다. 이름을 붙일 때는 이름붙여지는 대상에 대한 생각이 이름에 반영되기 마련이다. 자신의 이름을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름에는 그 이름을 지어준 부모님의 기대가 반영되어 있지 않은가.

  판소리라는 명칭은 판소리가 생길 때부터 붙여진 이름은 아니었다. 판소리라는 이름이 널리 쓰이기 이전에는 타령, 창, 잡가, 소리, 광대소리, 창악(唱樂), 극가(劇歌), 가곡(歌曲), 창극조(唱劇調) 등의 명칭이 사용되었다. 판소리라는 명칭이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는지 자세히 알 길은 없다. 판소리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문헌은, 김제 만경 출신으로 해방 직후 월북한 정노식이라는 사람이 1940년에 조선일보사 출판부에서 낸 {조선창극사}라는 책이다. 그러니까 판소리라는 명칭은 그보다 조금 일찍 생겨났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판소리라는 말을 그렇게 자주 쓰지는 않았다. 우선 책 제목에서부터 {조선판소리사}라고 하지 않고, {조선창극사}라고 함으로써, '창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때만 해도 판소리라는 명칭이 널리 쓰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판소리라는 명칭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해방 후라고 한다. 연세가 높은 판소리 애호가나 명창들에게 물어봐도 비슷한 대답이었다. 그런데 판소리가 생겨난 지 200년도 더 지난 다음에야 생긴 이름이 이제는 아주 널리 쓰이게 되고, 다른 명칭은 거의 쓰이지 않게 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무래도 판소리라는 명칭이 다른 명칭보다 훨씬 더 판소리의 특징을 잘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바로 판소리라는 명칭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연구할 때 으례껏 먼저 어원을 찾아 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판소리'라는 말은 '판'과 '소리'라는 낱말이 합쳐져서 만들어졌다. 그러면 먼저 '판'이라는 말에 대해서 알아보자. '판'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노름판', '씨름판', '굿판' 등에서와 같은 의미. 노름판이나 씨름판, 굿판은 노름이나 씨름, 굿이 벌어지는 장소를 뜻한다. 그리고 '판'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기 마련이다. 혼자서 어떤 일을 벌이는 장소에는 '판'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다. 그리고 좀 특별한 행위에만 '판'을 붙인다. 그래서 '판'이 붙을 수 있는 말이 많지는 않다. 그렇다면 여기서 '판'이라는 말의 의미는 '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 특수한 행위가 벌어지는 장소'라는 뜻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씨름 한 판', '바둑 두 판' 등에서 쓰인 것과 같은 의미. 이 때 '판'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한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니 대개 승패를 가르는 일의 경우에는 승패가 완전히 결판나는 결과에 이르렀을 때만 '판'을 사용할 수 있다.

  셋째, '판놀음', '판굿'에서와 같은 의미. 판놀음이나 판굿은 조선조 말 전문 유랑인 집단들이 벌이던 놀이를 가리킨다. 이들은 전문적인 연예인들로 조직되어, 유랑하면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놀이를 벌이고, 구경꾼들로부터 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므로 이 때의 '판'이란 전문인들이 벌이는 놀이나 행위를 가리킨다.

  이렇듯 '판'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판'을 첫 번째의 경우와 같은 것으로 보면, '판소리'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하는 소리'라는 뜻이 될 것이다. 놀이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구경꾼과 행위자가 구분이 안 되는 놀이, 즉 놀이를 하는 사람만이 있지 따로 구경꾼이 없는 경우도 있고, 하는 사람과 구경꾼이 구별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모인 장소란 당연히 구경꾼이 많이 모인 장소가 될 것이다. 구경꾼을 많이 모아놓고 벌이는 놀이가 바로 공연예술이다. 그러니까 첫 번째 의미 속에는 판소리가 공연예술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고 하겠다.

  두 번째와 같은 것으로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한 과정을 이야기하는 소리'가 될 것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플롯에서의 이른바 '전체'라는 개념과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말하기를, "전체는 처음과 중간과 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처음은 그 자신 앞에는 아무 것도 없고, 그것 다음에 다른 것이 존재하거나 생성하는 성질의 것이다. 끝은 이와 반대로 그 자신 필연적으로, 혹은 대개 다른 것 다음에 오나, 그것 다음에는 아무런 다른 것이 오지 않는 성질의 것이다. 중간은 그 자신 다른 것 다음에 오고, 또 그것 다음에 다른 것이 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잘 구성된 플롯은 아무 데서나 시작하거나 끝나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판소리는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는 이야기를 노래하는 소리가 될 것이다.

  세 번째와 같은 것으로 보면, 판소리는 '전문인들이 하는 소리'가 될 것이다. 판소리는 전문적인 훈련을 통해 전문적인 기능을 습득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소리라는 말이다. 판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판소리를 직접 부르고 싶어 못 견디는 사람들이 많다. 아닌 게 아니라, 좋다보면 듣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어떻게든 자기도 불러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다. 판소리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전문적인 예술이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가 서커스를 좋아한다고 해서 서커스를 직접 할 수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전문적인 예술은 전문적인 예술가만이 할 수 있고, 일반인은 그저 보거나 듣는 데 만족해야 한다. 보거나 듣는 일이 쉽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제대로 보고 들으려면 전문가에 가까운 식견과 감성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잘 들을 줄 아는 사람을 '귀명창'이라고 부른다. '귀명창'과 '명창'을 이렇듯 용어로 구분했다는 것은, 판소리 청중들이 판소리가 전문적인 예술이었음을 일찍부터 깨닫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판소리'에서 '판'은 어떤 의미로 보아야 할까. 위에 들고 있는 세 가지 모두의 의미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세 가지 의미가 모두 판소리에 타당한 특징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리'란 무슨 의미일까? '노래'가 서정적이고 짧은 것을 가리키는 데 비해, '소리'는 서사적인, 즉 이야기를 지닌 긴 노래를 가리킨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남도 민요나 서도 민요를 '남도 소리', '서도 소리' 한다든가, 들노래들도 '김매는 소리', '달구질 소리' 등으로 부르는 것을 보면 별로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소리'의 사전적 의미는 "귀에 들리는 공기나 물체의 빠른 진동"이다. '소리'는 청각으로 우리가 받아들이는 모든 현상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판소리의 '소리'에 관한 해석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판소리를 특별히 '소리'라고 한 것은 판소리가 자연의 온갖 소리를 다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본래 음악은 자연의 온갖 소리를 다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판소리만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판소리의 '소리'는 '목소리'의 준말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하다. 음악에서 인간의 목소리를 사용하는 분야는 성악이다. 그렇다면 판소리의 '소리'는 판소리가 성악의 일종이라는 것을 뜻한다고 하겠다. 목소리는 인간의 육체의 일부를 사용해서 내는 소리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만큼 인간적인 표현에 뛰어나다. 음악에서 성악을 제일로 친다거나, 인간의 성대를 가장 훌륭한 악기라고 하는 이유는, 인간의 목소리가 악기를 사용해서 내는 소리보다 아름답다거나 정확해서가 아니라,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의 목소리가 다른 악기보다 뛰어난 이유는,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사용해온 역사가 깊어서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으며, 다른 악기에 비해 유연해서 표현의 범위가 넓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궁극적으로는 인간적인 데 있다고 할 것이다. 인간에게 인간보다 소중한 것은 있을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판소리가 인간의 목소리를 표현의 재료로 삼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명칭을 통해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점이 아닐 수 없다



소리판의 구성
  

  판소리판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소리판의 구성 요소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판소리가 불려지는 상황에다가 촛점을 맞추고 생각해 보면 된다. 우선 노래를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노래하는 사람의 왼쪽에는 북을 치는 사람이 있다. 소리꾼은 서 있고, 북을 치는 사람은 북을 앞에 놓고 앉아 있다. 노래하는 사람을 '소리꾼' 또는 '창자'라고 하고, 북을 치는 사람은 '고수'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소리판이 다 완성되었는가? 아니다. 소리를 듣는 사람, 곧 청중이 빠졌다. 청중이 없는 소리판이 어디 있는가. 물론 연습을 한다든가, 녹음을 한다든가 하는 상황을 생각해 볼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된다. 앞에서 '판'의 의미를 말할 때도 분명히 '판'은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라고 했다. 그러므로 당연히 청중이 있어야 한다. 판소리 창자들이나 청중들 사이에서는 '일 청중, 이 고수, 삼 명창'이라고 하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첫 번째가 청중이고, 두 번째가 고수, 그 다음이 명창이라는 말이다. 물론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청중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인 것은 분명하다. 창자와 고수는 판소리 음악의 공급자이고, 청중은 소비자이다. 소비자가 없다면 공급은 해서 무엇하겠는가. 판소리는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청중을 위해서 존재하고, 청중 때문에 존재한다. 창자, 고수, 청중 이렇게 세 요소가 갖추어지면, 일단 소리판의 겉모습은 완성된다.

  그러면 이들 판소리 소리판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가. 그저 서로 얼굴이나 쳐다보고 있자고 해서 모인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창자를 보자. 창자는 우선 노래를 한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다. 말도 한다. 가만히 보면 창자는 노래와 말을 적절하게 교체 반복한다. 노래는 '창', 말은 '아니리'라고 한다. 그러니까 판소리는 '창과 아니리의 교체 반복 구조'로 되어 있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아니리) 이 때으 심황후가 이 말을 다 듣고 있을 이치가 있으리오마는, 소리를 허니 일이 늦게 되었겄다.

  (창 : 자진모리) 심황후 기가 막혀 산호 주렴을 걷혀 버리고 보신발로 우루루루루루루루루. 부친의 목을 안고, "아이고, 아부지!" 심봉사 깜짝 놀래, "아니, 누가 날다려 아버지여? 에이? 나보고 아버지라니? 이 말이 웬 말이여! 무남독녀 외딸 하나 물에 빠져 죽은 지가 우금 삼년이 되�는디, 누가 날다려 아버지여?" "아이고, 아부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 불효여식 심청이가 살어서 여기 왔소. 아버지, 눈을 떠서 저를 급히 보옵소서. 아이고, 아부지." 심봉사가 이 말을 듣더니 어쩔 줄을 모르는구나. "에? 아니, 심청이라니? 청이라니? 이게 웬 말이여? 에이? 이게 웬 말이여? 내가 지금 죽어 수궁을 들어왔느냐? 내가 지금 꿈을 꾸느냐? 죽고 없난 내 딸 청이, 이 곳이 어디라고 살어오다니 웬 말이냐? 내 딸이면 어디 보자. 어디, 내 딸 좀 보자! 아이고, 내가 눈이 있어야 내 딸을 보지. 아이고, 답답허여라! 어디, 내 딸 좀 보자!" 심봉사가 두 눈을 끔쩍끔쩍하더니마는, 부처님의 도술로 눈을 번쩍 떴구나.

  (아니리) 심봉사 눈 뜬 훈짐에 잔치에 참례한 봉사 모두 따라서 눈을 뜨는디,

  (창 : 잦은모리) 만좌 맹인이 눈을 뜬다. 전라도 순창 담양 세갈모 띠는 소리라. '쫙 쫙'허더니마는 그저 눈을 떠버리는구나. 석 달 동안 큰 잔체의 먼저 와서 참례하고 내려간 맹인들도 저의 집에서 눈을 뜨고, 미처 당도 못 한 맹인 중도에서 눈을 뜨고, 가다 뜨고, 오다 뜨고, 서서 뜨고, 실없이 뜨고, 어이없이 뜨고, 홰내다 뜨고, 울다 뜨고, 웃다 뜨고, 떠보느라고 뜨고, 시원히 뜨고, 일허다 뜨고, 앉어 놀다 뜨고, 자다 깨다 뜨고, 졸다 번뜻 뜨고, 눈을 끔적거리다 뜨고, 눈을 비벼보다 뜨고, 지어비금주수까지 일시으 눈을 떠서 광명 천지가 되었구나. (정권진 창 [심청가] 중에서 심봉사 눈뜨는 대목)


  '창'에는 장단이 있다. 그런데 때로 창 속에는 말로 된 부분이 있기도 하다. 장단은 그대로 흘러가게 둔다. 이를 '도섭'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아니리 속에는 노래처럼 된 부분이 있다. 물론 이 때는 장단은 없다. 이런 부분을 '창조(唱調)'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부분이 많은 것은 아니다.

  창자는 또 연기와 같은 동작을 한다. 슬플 때는 우는 시늉을 하기도 하고, 흥겨울 때는 춤을 추기도 한다. 뱃노래가 나오면 노 젓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이런 동작을 '너름새'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발림'이라고 하지만, 발림은 대개 민요와 같은 노래를 할 때 하는 춤동작에 한정해서 쓰는 것이 옳다. 판소리에서의 동작은 춤동작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연극의 연기에 근접하는 동작까지를 포함한다. 그래서 따로 너름새라고 한다.

  자세히 보면 창자는 오른손에 부채를 쥐고 있다. 부채는 여러 개의 살을 모아 한지(韓紙)를 발라서 만든 것으로, 폈다 접었다 할 수 있는 합죽선이다. 부채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기도 하고, 글씨가 씌어져 있기도 하다. 창을 하면서 창자는 이 부채를 폈다 접었다 하면서 적절하게 사용한다. 어떤 때는 부채를 지팡이처럼 사용하기도 하고, 편지를 읽는 장면에서는 부채가 편지 대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그냥 더워서 더위를 식히느라 부채질을 하기도 한다. 요컨대, 창자에게 부채는 다목적 소도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고수는 창자의 왼쪽에 창자를 바라보고 앉아서 북을 친다. 그런데 북만 치는 게 아니라, "얼씨구", "좋다", "잘헌다", "그렇지", "아먼" 등등의 말을 한다. 이것을 '추임새'라고 한다. 고수는 이 추임새를 잘해야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한성준(1874- ? )이라는 고수가 추임새를 잘한 것으로 유명하고, 최근에 작고한 김동준(1928-1990)도 추임새를 잘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추임새를 잘하면 소리꾼은 지쳤다가도 금방 힘을 얻는다고 한다.

  청중은 무엇을 하는가. 청중은 그냥 가만히 앉아서 소리를 듣기만 하면 되는가? 서양식 음악회라면 당연히 숨죽이고 앉아 있어야 한다. 서양식 공연의 감상은 근본적으로 엿보기 양식이기 때문에, 없는 듯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판소리는 그렇지 않다. 판소리는 공연 상황에 대한 청중이나 관중의 참여가 언제나 보장된다. 그뿐 아니라, 참여를 해야만 한다. 물론 참여해야 한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된다. 판소리의 모든 청중은 추임새를 통하여 공연에 관여할 수 있다. 참으로 훌륭한 청중은 제대로 된 추임새를 할 수 있는 청중이다. 그래서 어떤 판소리 음반은, 실황이 아니고 청중이 없는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것인데도 일부러 추임새를 넣은 것도 있을 정도이다. '일 청중, 이 고수, 삼 명창'에서 말하는 첫 번째로 중요한 청중이란 바로 제대로 된 추임새를 하는 청중이다. 그러므로 이 말의 참뜻은 판소리를 제대로 들을 줄 아는 청중들을 위해서 판소리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제대로 된 청중에 의해서 판소리 소리판은 완성된다.



[출처] http://www.pansori.or.kr/pansori.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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