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묘지서 상궁 묘비 2기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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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양반 등의 분묘 1000기가 밀집돼 있는 서울 노원구 월계동 및 도봉구 창동 일대 ‘초안산 조선시대 분묘군’(사적 제440호)에서 정5품 상궁(尙宮) 벼슬을 지낸 궁녀의 묘비(墓碑) 2기가 새로 발견됐다.
내시(內侍)·궁녀(宮女) 연구가이자 국사편찬위원회 서울시 사료조사위원인 박상진씨는 10일 “서울시 노원구 월계동 초안아파트 뒤편 초안산 자락에서 조선시대 영조 임금 때 상궁을 지낸 ‘상궁개성박씨(尙宮開城朴氏)’의 묘비가 머릿돌이 잘린 채 쓰러져 방치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와는 별도로 월계로 맞은편 163번 버스 종점 인근 산자락에서도 또 다른 ‘상궁박씨’의 묘비가 쓰러진 채 상석과 함께 방치돼 있는 모습이 확인됐다.
박씨는 “현재까지 전국적으로 남아 있는 상궁 묘는 채 10기가 안 된다”며 “서울시가 올 초 초안산 일대의 조선시대 분묘군에 대한 대대적 정비계획을 밝힌 만큼 이번에 발견된 궁녀묘 2기도 제대로 복원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중 비문이 확인된 ‘상궁개성박씨’ 묘비의 경우, 머릿돌을 합쳤을 때 높이 약 121㎝, 폭 48㎝, 두께 12㎝인 비신 앞면에 ‘조선국상궁개성박씨묘(朝鮮國尙宮開城朴氏墓)’라는 글씨가 대자로, 뒷면과 오른쪽 측면에는 박상궁의 생애가 기록된 138자의 비문(碑文)이 각각 새겨져 있다.
가의대부(嘉義大夫·조선시대 문관 종2품 상의 관계) 전현감 김국표(金國杓)가 짓고 쓴 비문에 따르면, 박상궁은 1706년(숙종 32) 태어나 1726년(영조 2)에 궁녀로 선발돼 대궐에 들어갔고, 1740년(영조 16) 봄에 궁녀의 최고위직인 정5품 상궁(尙宮)에 제수됐다. 이후 영조와 왕실 가족을 모시다가 1763년(영조 39) 1월30일(이하 음력) 58세로 죽어 같은 해 2월6일 선영(先塋)이 있던 양주(楊州) 남면(南面) 해동촌(海東村) 각심사(角心寺) 손좌(巽坐·남동방)의 언덕에 장사지낸 것으로 돼 있다.
현재 ‘상궁개성박씨’의 묘역에는 봉분과 함께 일제시대에 새로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상석이 함께 남아 있다. 또 잘라진 머릿돌이 상궁 묘 오른쪽 아래에서 함께 발견됐으며, 묘역 왼쪽에는 박상궁의 증조부되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박근후(朴根厚)의 묘비가 함께 서 있다.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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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시대 상궁 묘비 발견
기사입력 2009-04-10 11:22
서울 월계동 초안산 분묘군서 찾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양반을 비롯한 조선시대 분묘 1천기 가량이 밀집된 서울 노원구 월계동 및 도봉구 창동 일대 '초안산 조선시대 분묘군'(사적 440호)에서 정 5품 상궁(尙宮) 벼슬을 지낸 궁녀 묘비(墓碑)가 발견됐다.
내시(內侍)와 궁녀(宮女) 연구가인 국사편찬위원회 서울시 사료조사위원 박상진 씨는 월계동 초안아파트 뒤편 초안산 자락에서 영조 때 상궁을 지낸 '상궁개성박씨(尙宮開城朴氏)' 묘비가 머릿돌이 잘린 채 쓰러져 방치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10일 밝혔다.
박씨는 또 월계로 맞은편 163번 버스 종점 인근 산자락에서도 또 다른 '상궁박씨'의 묘비를 찾아냈다.
이 중 '상궁개성박씨' 묘비는 머릿돌을 합치면 높이 약 121㎝, 폭 48㎝, 두께 12㎝인 비신 앞면에 '조선국상궁개성박씨묘(朝鮮國尙宮開城朴氏墓)'라는 글씨를 새겼으며, 뒷면과 오른쪽 측면에는 그의 생애를 138자로 묘사했다.
가의대부(嘉義大夫) 김국표(金國杓)가 지은 비문에 의하면, 박 상궁은 1706년(숙종 32)에 태어나 1726년(영조 2)에 궁녀로 선발돼 대궐에 들어갔으며, 1740년(영조 16) 봄에 궁녀 최고위직인 정5품 상궁(尙宮)에 제수됐다.
이후 영조를 비롯한 왕실 가족을 모시다가 1763년(영조 39) 1월30일(이하 음력) 58세로 죽어 같은 해 2월6일 선영(先塋)인 양주(楊州) 남면(南面) 해동촌(海東村) 각심사(角心寺) 손좌(巽坐ㆍ남동방)의 언덕에 장사지낸 것으로 적혀있다.
비문은 박상궁이 "성품이 단정하고 지혜로웠으며, 충심으로 윗전을 받들었고, 사랑으로써 아랫사람을 대했다"면서 "누대에 걸친 선영에 비석을 세우니, 종족(宗族)과 향당(鄕黨)에서 칭찬을 받았다"고 했다.
그의 묘역 왼쪽에는 박상궁의 증조부인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박근후(朴根厚)의 묘비가 함께 서 있다.



(서울=연합뉴스) 조선시대 분묘 1천기 가량이 밀집된 서울 노원구 월계동 및 도봉구 창동 일대 소재 '초안산 조선시대 분묘군'(사적 440호)에서 깨진 채 발견된 영조시대 상궁의 묘비. 이 묘비는 앞면에 '조선국상궁개성박씨묘(朝鮮國尙宮開城朴氏墓)'라는 글씨를 새겼으며, 뒷면과 오른쪽 측면에는 그의 생애를 138자로 묘사했다. 2009.4.10 << 문화부 기사참조, 박상진씨 제공 >>
초안산 양반묘지서 상궁 묘비 발견
20090410003116
양반을 비롯한 조선시대 분묘 1000기가량이 밀집된 서울 노원구 월계동과 도봉구 창동 일대 ‘초안산 조선시대 분묘군’(사적 440호)에서 정5품 상궁 벼슬을 지낸 궁녀 묘비가 발견됐다.
내시·궁녀 연구가인 국사편찬위원회 서울시 사료조사위원 박상진씨는 월계동 초안아파트 뒤편 초안산 자락에서 영조 때 상궁을 지낸 상궁개성박씨 묘비가 머릿돌이 잘린 채 쓰러져 방치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10일 밝혔다. 박씨는 또 월계로 맞은편 163번 버스 종점 인근 산자락에서도 또 다른 상궁박씨의 묘비를 찾아냈다.
이 중 상궁개성박씨 묘비는 머릿돌을 합치면 높이 약 121㎝, 폭 48㎝, 두께 12㎝인 비신 앞면에 한문으로 ‘조선국상궁개성박씨묘’라는 비명이 새겨져 있다. 뒷면과 오른쪽 측면에는 “성품이 단정하고 지혜로웠으며, 충심으로 윗전을 받들었고 사랑으로써 아랫사람을 대했다”고 그의 생애를 묘사했다.
가의대부 김국표가 지은 비문에 의하면, 박 상궁은 1706년(숙종 32)에 태어나 1726년(영조 2)에 궁녀로 선발돼 대궐에 들어갔으며, 1740년(영조 16) 봄에 궁녀 최고위직인 정5품 상궁에 제수됐다.
김지희 기자 kimpossibl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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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2009.04.10 (금) 20:58, 최종수정 2009.04.10 (금) 21:01
[앵커멘트]
초안산 일대에 그동안 방치돼 있던 묘비를 조사한 결과 조선시대 박 씨 성을 가진 상궁의 묘비로 확인됐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상궁의 묘비로 추정됩니다.
티브로드 뉴스 정신규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초안산 주변에 여기저기 흩으져 있는 분묘들.조선시대 내시와 상궁들의 묘소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묘비는 파괴되고 봉분은 심하게 훼손돼 있습니다.
심지어 봉분 위로 나무가 자라는가 하면 등산로까지 나 있습니다.
[인터뷰:이정우, 향토사학자] "조선시대의 귀중한 역사 유물이 많이 있는데 조상들이 남겨 놓은 역사 유물을 후손들이 제대로 관리도 보존도 못하고"
이에 따라 노원구는 초안산분묘군 연구에 나서 지금까지 발견된 상궁의 묘비 중 가장 오래된 묘비를 발견했습니다.
이번에 발견된 개성박씨의 묘비는 높이 111cm, 폭 42cm, 두께 16cm로 비신 앞면에는 해서체로 '상궁박씨지묘'가, 뒷면에는 '만력이십칠년기해오월일립'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즉 선조 32년인 1599년에 세워진 것입니다.
[인터뷰:박상진, 향토사학자]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궁녀 묘비로 확인된 것이 상당히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봅니다"
초안산 분묘군은 서울에서 유일한 내시와 궁녀들의 집단묘역으로 16세기부터 19세기말까지 만들어진 석비와 문관석, 동자상 등은 조선시대 미술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인터뷰:박상진, 향토사학자] "비석같은 이런 금석문, 역사의 정사에서 이렇게 누락된 내시와 궁녀의 사료를.."
노원구는 상궁박씨의 묘비를 서울시에 문화재로 지정해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국시비를 지원 받아 초안산분묘군 일대를 정비할 계획입니다.
티브로드 뉴스 정신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