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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의 나부상

서울문화 2006. 6. 12. 14:05

 

 전등사나부상(裸婦像)

 

 

 

 

한국 최초 누드상일지도 모를 강화 전등사 나부상

 

 

 

▲ 전등사 대웅전 처마 끝 네 귀퉁이에는 어쩜 한국 최초의 누드 조각품일지도 모르는 나부상이 있습니다.
ⓒ 임윤수
"바다가 육지라면?" 흘러간 대중가요의 노랫말처럼 바다가 육지라면 섬 또한 섬이 아니니, 섬 속에 숨은 절을 찾아가는 별다른 설렘이 일지는 않을 겁니다. 섬을 찾아가려면 '통통' 거리는 엔진소리와 매연 뿜어내며 쏜살같이 달려가는 기선(機船)조차 없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 옛날 섬들을 찾아가려면 작은 파도에도 살랑거리는 가랑잎 같은 목선(木船)을 이용해 바다를 건너야 했을 겁니다.

일렁거리고 삐걱거리는 목선에 몸과 마음을 실으면 능숙한 솜씨로 닻 거두고 돛 올려 바람 따라 물길 따라 느릿느릿 다가갔던 곳이 바다에 있는 크고 작은 섬들입니다. '마음이 있으면 천리도 지척이고, 마음이 없으면 지척도 천리'지만 그 옛날 바다를 건너야 하는 섬 속에 절 짓고 부처님 말씀 전한다는 건 예삿일에 보통 지성이 아닙니다.

▲ 전등사는 여느 사찰들과는 달리 성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갑니다.
ⓒ 임윤수
강화도엔 마니산뿐 아니라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또 하나 등불'인 전등사를 안고 있는 정족산(鼎足山)도 있습니다. 산 이름의 정(鼎)은 '발이 셋 달린 솥'을 말하니 산세와 무관하지 않을 듯합니다. 정족산은 강화도의 주봉인 마니산 한 줄기가 동북쪽으로 뻗으며 세 봉우리가 솟아 마치 '다리 셋 달린 솥'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데서 유래하였다 합니다.

352번 지방도 끝, 초지대교 좌우엔 잔잔한 바다와 갯벌이 있고, 크지 않은 어선들이 파도에 끄덕끄덕 고개를 흔들고 있습니다. 다리를 건너며 전등사를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가니 얼마 가지 않아 전등사 남문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 오르막 진입로는 촉감 좋은 황톳길입니다.
ⓒ 임윤수
찾아간 곳이 분명 절인데 도착한 곳은 성곽 입구입니다. 높은 성곽에 망루처럼 우뚝 솟은 건물이 종해루(宗海樓)란 편액을 달고 있습니다. 정족산성으로 들어가는 성문입니다. 예전에야 성문이었고 지금도 그 형태가 성문이지만 부낫?찾아가는 마음엔 또 다른 형태의 일주문이며 사천왕문입니다. 그 안에는 금강장사도 없고 해탈문이란 편액을 달고 있지도 않았지만 금강문이고 해탈문입니다.

눈 뜨면 아름다움 느낄 수 있는 노천 갤러리

전등사!
1282년, 충렬왕 때 왕명을 받은 인기(印奇) 스님이 송(宋)나라에 가 대장경을 구해오고, 원비가 옥등잔(玉燈盞)을 시주해 대웅전에 밝히니 예전의 진종사에서 전등사로 절 이름을 고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단순하게 원비가 옥 등잔을 시주해 밝혔다고 절 이름이 바뀌었다고 보기엔 뭔가 모자람이 있을 듯합니다.

전등사(傳燈寺)의 등(燈)자는, 단순하게 불을 밝히는 등잔이나 등불을 말하기도 하지만 '부처(佛)의 가르침'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전등사란 이름은 '부처님 말씀을 말하고,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도량(寺)'이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 한 바퀴를 돌리는 것만으로도 가득 채워진 경전을 다 읽은 것과 같은 지혜를 얻는다는 윤장대가 진입로 오른쪽에 놓여 있습니다.
ⓒ 임윤수
성문을 들어서며 시작되는 진입로는 노천갤러리입니다. 눈 씻고 헤매지 않아도 전등사 주변의 사계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순간 포착한 사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사진들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둥그스름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꽃도 있고 곤충도 있습니다. 풍경을 담고 있는 것도 있고, 자연을 담아낸 것도 있습니다.

울창한 그늘에 비스듬한 오르막길은 촉감 좋은 황톳길입니다. 노천갤러리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모습들을 떠올리며 걷다 보면 두 그루의 커다란 은행나무가 왼쪽으로 나옵니다.

수백 년 동안 장승처럼 그 자리서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았을 은행나무지만 가는 세월만큼은 이기지 못했는지 쇠잔해 보입니다. 보수된 부분이 군데군데 검버섯처럼 피어 있고 여기저기 매달린 수액봉투가 마음을 안쓰럽게 합니다. 수령이 600년은 넘었을 거라 합니다. 은행나무 건너 쪽, 올라가는 길 오른쪽엔 윤장대가 놓여 있습니다.

윤장대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경(經)을 가득 채운 팔각형 서고로 단청이 화려하고 회전이 가능합니다. 누구든 이 윤장대를 돌리면 안에 들어 있는 책을 다 읽은 것과 마찬가지로 지혜와 깨우침을 얻을 수 있다고 하니, 차분히 앉아 부처님 말씀을 공부할 시간이 없음을 안타까워 할 현대인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한 방편인 듯합니다.

두 손을 얹고 손잡이를 앞으로 밀치니 윤장대가 돌기 시작한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윤장대가 돌아가는 대로 서너 바퀴 따라 돌다 보니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채워진 번뇌가 많아 당장은 어떤 지혜를 얻고 무얼 깨달았는지 느낄 수 없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가 충분합니다.

윤장대를 돌리고 조금 더 올라가니 좌측으로 얌전한 찻집이 보입니다. 걸터앉을 의자쯤은 마당에도 놓여 있습니다. 지겹도록 앉아 있고 싶습니다. 앉아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명상의 세계로 빠져들 듯합니다.

▲ 아침 일찍 찾아간 대웅전은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대웅전 네 귀퉁이에 앉아 있는 벌거숭이 목각 여인들을 바라보며 발가벗겨진 자화상을 떠올려보았습니다.
ⓒ 임윤수
찻집을 나오면 Y자의 갈림길입니다. 오른쪽은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돌계단이고 왼쪽은 객사로 가는 길입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돌계단으로 올라서니 누각으로 된 대조루(對潮樓) 아래를 지나 대웅전으로 들어갑니다. 대웅전 앞마당은 계단을 통해 다시 한 단 올라서야 하고, 대웅전은 마당보다 다시 ?단 더 높은 자리에 정면으로 있고 남향입니다.

널찍한 마당 건너 쪽, 한단 높게 자리한 대웅전은 정면 세 칸 규모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전등사의 오래된 사적이 아름드리 대웅전 기둥에 똬리를 틀었습니다. 움푹 파인 나뭇결마다 노색(老色)의 세월이 앉아 있습니다. 3배를 올리고 108배를 올린 무수한 불자들이 남긴 흔적들이 반질반질한 광택으로 법당바닥에 남아 있습니다.

'고풍'이 무엇인지 아느냐... 전등사 법당의 고색창연한 닫집

▲ 대웅전 마룻바닥에 앉아 들어오는 입구를 주시해 보았습니다.
ⓒ 임윤수
부처님이 모셔진 닫집이 눈길을 잡습니다. 어느 전각의 구조물이나 단청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닫집에 부처님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닫집은 법당이라고 하는 불전 속 불전입니다. 경배의 대상인 부처님이 모셔진 불전은 부처님만의 신성한 영역입니다.

당초의 법당은 넓은 건물 정 중앙에 부처님을 모셨었다고 합니다. 세월이 흐르며 부처님을 가까이 뵙고자 하는 속인들의 욕구를 해소시켜주기 위해 중앙에 모셨던 불상을 뒤로 옮기며 법당 속 불전을 마련하니 그것이 닫집입니다.

전등사 대웅전 닫집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섬세한 솜씨로 조각된 닫집 천장엔 극락조가 날고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승천할 듯 생동감 있게 조각된 용들이 여의주를 문 채 부처님을 외호하는 모습입니다. 고풍! 바로 그 고풍이 뭔가를 전등사 대웅전 닫집이 보여줍니다.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대웅전 닫집도 전등사 보물이지만 대웅전 바깥 처마 들보 사이에 끼워진 조각들도 볼거리입니다. 생각에 따라 그 모습이 발가벗은 여인상(裸婦像)일 수도 있고 원숭이일 수도 있다는 조각품입니다.

세속의 욕정이 앞서는 눈으로 보니 발가벗은 여인으로 보입니다. 연꽃이나 도깨비조각이야 다른 절, 어느 전각에서도 가끔은 볼 수 있었지만 부끄럼도 잊은 듯 알몸에 치부 다 드러내고 머리높이로 팔을 올리고 있는 '나부상'은 전등사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조각입니다.

비슷한 크기와 흡사한 표정이지만 어떤 나상은 양쪽 팔 모두를 머리 위로 올려 보를 떠받들고 있고, 어떤 나상은 한 손으로는 무릎을 짚은 채 한 손으로만 지붕을 떠받들고 있습니다. 벌거벗은 여인네 모습을 한 나부상들이 대웅전 네 귀퉁이서 업보의 무게에 짓눌려 있습니다. 발가벗은 몸에 빨간 띠 하나 두른 나부상의 멀뚱한 표정에 자상(自像)이 겹쳐집니다. 매사에 일희일비하며 지붕만큼이나 쌓은 번뇌의 그 무게에 허덕이는 자신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 전각 뒤쪽으로 올라가 바라보는 대웅전 경내는 조용하기만 합니다.
ⓒ 임윤수
전설 하나쯤 있을 듯해 주변을 둘러보니 설화를 적어놓은 안내판이 있습니다. 대웅전을 짓던 도편수는 아랫마을 주모와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고 합니다. 알콩달콩 사랑에 빠진 도편수는 노임으로 받는 돈까지 그녀에게 맡길 정도로 마음을 주었으나 돈에 눈 먼 주모는 불사가 끝날 무렵 돈을 챙겨 줄행랑을 놓았답니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어야 하는 도편수는 상심한 마음을 주모 닮은 나부상(裸婦像)으로 조각해 처마 들보에 끼워넣으니 그 조각품이 나부상이라고 합니다. 받들고 있는 지붕만큼이나 무거운, 도편수가 주모에게 가졌던 증오의 표痔?수도 있지만 매일 들어야 하는 염불소리를 들으며 참회하라는 마지막 사랑의 징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모습이 언?보면 원숭이 같기도 하니 또 다른 전설도 적혀 있었습니다.

그것이 벌거벗은 여인의 육신을 표현한 것이라면 전등사 대웅전 처마 들보의 나부상은 한국 최초의 누드 조각이리라 생각됩니다. 애증의 산물인지 숭고한 희생의 표현인지 분명치 않지만 자칫 밋밋해질 수도 있는 산사기행에 세속인들 눈 맛 틔우고 입맛 돋우는 별미임은 분명합니다.

▲ 여인이여, 여인이여! 벌거벗은 여인이여! 榴育?벌거벗은 모습보다도 더 부끄러운 모습이 우리네 모습입니다.
ⓒ 임윤수
적묵당 앞으로 가 감로수를 퍼 한 바가지 벌컥 마시니 온몸에 생기가 돕니다. 캄캄할 때 올라 온 진입로에는 어느새 햇살들이 깔려 있습니다. 일주문을 대신한 성곽을 나오니 온통이 후끈합니다. 강화도를 벗어나는 연육교에 올라서니 추녀 끝 발가벗은 여인네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옵니다.

"난 봤지. 부질없는 돈 욕심, 덧없는 애욕과 오욕칠정으로 가득한 네놈 번뇌" 하며 조롱하는 듯한 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옵니다. 그만한 세월 동안 법당 처마 끝에 매달려 무거운 들보를 받쳐 들고 염불소리 듣고 목탁소리 들었으면 속죄도 하고 깨달음도 얻었을 것 같은 나부상을 향해 두 손을 모아봅니다.

여인아, 여인이여! 발가숭이 여인이여!
그대의 벌거벗은 모습보다도 더 부끄러운 모습이 우리네 모습입니다. 중얼거리는 혼잣말 속에 부끄러움이 묻어납니다.

 

 

 

 

 

* 오마이뉴스/ 임윤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