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방/한국의 꽃

원추리꽃

서울문화 2006. 5. 24. 11:03


(사진: 김남숙 - 홑왕원추리 꽃)

윗 사진은 한낮에 찍은 것입니다. 배경이 깜깜한 것은 밤이어서가 아니고
비가 내리고 해가 뜨지 않은 우중충한 날씨 때문입니다.
원추리꽃은 밤에는 피지 않습니다.


(사진: 김남숙 - 홑왕원추리 꽃)

원추리꽃

- 김남숙 (숲해설가 & 시인) -


어제 낮에 핀 원추리 꽃입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벌도, 나비도 없는데

비를 흠뻑 맞고 원추리 꽃이 피었습니다.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듯 피었다가
밤새 활짝 핀 꽃잎을 접어 거두었습니다.
원추리 꽃은 밤에는 피지 않습니다.
꽃이 피는 시간은 하루입니다.
그것도 만 24시간 하루가 아니고 아침나절부터 저녁나절까지 말이지요.
 
영어 이름은 Day Lily입니다.
이 꽃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이름이지요?

그래도 혹시 밤새 피어있지는 않을까?

너무 아쉬워 밤사이만이라도 더 피어있지 않을까...
설마 뚝 떨어져 가버리진 않았겠지... 하면서
아직 해 뜨지 않은 이른 새벽(새벽 4시 20분), 옷 주섬주섬 챙겨 입고
카메라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꽃이 혹 피었는지? 
어제 진 꽃은 떨어져 버렸는지, 아니 아직 있는지 확인하려고요.

어제 아침부터 해가 질 무렵까지도 활짝 피었었는데

그 새, 자신의 꽃잎을 돌돌 말아  정갈하게 접고 있더군요.


오늘, 새로운 송이가 꽃을 피웠더군요.
잠시 해가 흐릿하게 났지만, 공기가 축축하고 너무 무거워
벌과 나비가 활동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비가 오든지 바람이 몹시 불든지 상황을 고려치 않고 한껏 피웠다가

소리 없이 지는 원추리 꽃~!

벌과 나비가 찾아와 수분을 도와주지 못했고

바람이라도 불어 어디선가 꽃가루가 날아오지도 못했습니다.


그저께 피었다 진 꽃잎 곁에 어제 핀 꽃잎이 떨어졌습니다.

자가 수정을 하지는 않았기에 씨앗을 맺을 수는 없으니까

꽃대에 붙어 있을 이유도 없게 된 것입니다.

 

떨어진 꽃송이 주변에 맺힌 남은 봉오리들이 하나씩  피고 지고
또 새로운 송이가 꽃을  피우고 지고 하겠지요.

어느 운 좋은 날 핀 꽃은 수분을 하게 되고 수정이 이루어진 꽃은

영근 씨앗을 만들기 위해 뜨거운 한 여름을 견뎌내겠지요?


망우초(忘憂草) , 근심을 잊게 하는 꽃이라고도 불립니다.

꽃이 아름답기도 하려니와 꽃과 뿌리를 차로 마시면

온갖 독을 풀어주며, 마음을 안정시키고, 우울증 치료효과도 있다고 합니다.

 

원추리 어린 순은 취나물과 함께 봄나물로
뿌리에 달린 덩이줄기는 양식이 되어 줌으로써
근심을 덜어주었기에 붙여진 이름은 아닐까요?
봄 처녀 바구니에 뜯기고서도 어느새 여름이 되면
산에는 주홍빛 여린 꽃이 피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루만 피었다가 가는 꽃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열매를 맺지는 못해도 주어진 현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원추리 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일도  최선을 다했다고 되어지는 것만은 아닐 겁니다.


열매 맺지 못하고 떨어지는 아쉬움이 꽃이라고 어디 없을까요?

그래도 순응해야 하는 것, 그것이 자연의 힘일 겁니다.

하얗게 뿜어대는 연막소독차의 뒤꽁무니를 따르는 단지 내의 아이들의 함성이

창밖으로 울려 퍼지는 저녁 무렵,

하루를 살아도 온몸을 사르며 피워낸 주홍빛 원추리 꽃에 마음을 담아 봅니다.

붙임글)

왕원추리와 홑왕원추리, 원추리 모두 백합과에 속하는 여름꽃입니다.
왕원추리 꽃은 겹꽃이고, 홑왕원추리 꽃은 겹꽃이 아닙니다.
그냥 원추리 꽃은 왕원추리 꽃에 비해 연한 주황색이고요,
어린 순을 나물로 먹을 수 있어 '넘나물'이라고도 부릅니다.
모두 하루 피었다가 지는 꽃입니다.

- 김남숙 -  


(사진: 김남숙 - 연막차 뒤꽁무니를 따라가는 아이들)


(사진: 김남숙 - 활짝 피어난 홑왕원추리 꽃)


(사진 : 김남숙 - 하루를 접은 홑왕원추리 꽃)


(사진 : 김남숙 - 겹꽃인 왕원추리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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