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과 삶의 기초교리

겨우 존재하는 것들( 極微)
생명의 근원은 미미한 존재
큰 물질을 쪼개고 쪼개
근본을 살피는
것은
자기반성·현실 이해통해
실체의 근본 깨달기 위함
두 오누이가 있었습니다. 오빠는 쵸코파이 하나를 가지고 있었지요. 누이가 오빠에게 쵸코파이를 ‘조금만
줘’ 했습니다. 오빠가 주지 않자 다시 동생은 ‘눈꼽만큼만 줘’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엔 어떤 말로 해야 ‘눈꼽보다’ 작은 것을 형용할 수
있을까요. 가장 작은 단위 혹은 물질(우리말로 ‘물’, 物)을
일컬을 때 우리는 대개 극미 혹은 인허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존재를 얼마만큼 쪼개야 하며 이렇게 부를 수 있을까요. 부파불교
수행자들은 불교의 근본교설인 무아설을 위배하지 않으면서도 윤회의 주체를 설정하려 했습니다. 때문에 윤회의 주체를 세우면서도 실체의 혐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비즉비리온아’(非卽非離蘊我), 혹은 ‘찰라생(刹那生) 찰라멸’(刹那滅)과 같은 표현을 통해 끊임없이 쪼개고 해체하였죠.
실체를 세우지
않으면서도 자기 동일성을 해명하려는 이러한 노력은 물질적 존재에 대해 덧붙인 설일체유부의 다섯 가지의 설명에서 잘 드러나고 있지요.
이를테면 색(色)이란
1) 파괴되는
것이며, 2) 네 원소(四大)와 네 원소에 의해 존재하는
것(四大所造色)이며, 3) 오근(五根)과 오경(五境)과 무표색(無表色)의 11가지의 달마이며,
4) 무표색을 제외한 원자의 집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5) 색이 생겨날 때 여덟 가지가 함께
생겨난다고 말이죠.
여기서 우리는 원자설에 대해 주목해보게 됩니다. 불교에서는 ‘극미’, ‘인허‘ 등의 기호로 가장
작은 단위의 존재를 표현합니다.
극미는 ‘극한의 미립자’, 즉 ‘지극히 미미한
존재’를 일컫는 것이지요. 그 이상 나눌 수 없는 근본 물질인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원자를 구성하고 있는
소립자의 하나인 전자는 다시 더 작아져 현대물리학에서는 ‘쿼크’라는 최소단위로 명명하고 있지요. 너무나
작아서 ‘있는 듯 마는 듯’하고, ‘보일듯 말듯’한 존재이죠.
원자 한 개를 중심으로
전·후·좌·우·상·하에 각기 하나의 원자가 결합되어 일곱 개의 원자가 모인 것을 하나의 미취(一微聚)라 했습니다. 이 미취가 일곱 개 모인 것이 일금진(一金塵), 이 금진이 일곱 개 모인 것이 일수진(一水塵), 이 수진 일곱 개가 모인 것이 일토모진(一兎毛塵), 이 토모진 일곱 개가 모인 것이
일양모진(一羊毛塵), 이 양모진 일곱 개가 모인 것이
일우모진(一牛毛塵), 이 우모진 일곱 개 모인 것이
일극유진(一隙遊塵)이라 하고,
이 극유진 일곱 개가 모인 것이
‘서캐’이며, 이 서캐가 일곱 개 모인 것이 ‘이’이며, 이 ‘이’ 일곱 마리가 모여 ‘밀’ 하나를 형성하며, 이 밀 하나는 칠의
십승(282,475,249개)의 원자가 모인 것입니다. 원자 역시 시간적 지속성을 갖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생멸할
뿐이죠.
부파불교 수행자들이 고요한 승원에 앉아 이렇게 존재를 쪼개고 해체했던 까닭은 결국 윤회의 주체
설정과 그것의 실체성 혐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었죠.
이들은 처음 고요한 승원에 앉아 존재 분석과 개인적인 깨달음에만
집중했습니다. 이 때 재가자들은 참다운 불교 정신으로 돌아가자며 불탑신앙을 일으키게 되죠. 이 때문에 시주자들의 보시로 운영되던 교단은 심각한
재정적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때마침 4차 경전 결집이 이루어지면서 신앙의 전환운동이 일어나고 대승경전(반야부)에는 공덕사상이
실리게 되죠. 결국 벌판에 세워진 불탑을 승원 내부로 옮겨오게 되고, 탑 속에 들어있던 사리가 경권(경전)으로 대체되면서 대승경전의 대중화가
본격화됩니다.
이후에는 경전과 사리를 아울러 봉안하면서 불교 교리를 충돌없이 설명해 주지요.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의 기술처럼
7세기 초중기 인도불교의 신앙형태는 아비달마적 신앙이 6할 4푼, 대승이 2할, 나머지 1할 6푼은 대소승 겸학이었다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인도불교의 주축은 부파불교라 할 수 있죠. 아비달마 논사들은 현실의 확인을 위한 ‘달마’와 개인의 실존적 반성을
위한 ‘업’의 이론을 정치하게 발달시켰습니다. 이들에겐 무엇보다 수행자의 자기 반성과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최우선이었죠. ‘울타리가 텅 빈 존재’(隣虛), ‘겨우 존재하는 것들’(極微)의 개념이 탄생한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 글/ 고영섭 박사<동국대학교>
98년 동국대 대학원불교학과에서
‘문아원측’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원효 한국사상의 새벽〉, 〈원효탐색〉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한 주목받는
소장불교학자이다
*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