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서울역사문화포럼

안동,영덕 학술답사를 다녀와서

서울문화 2006. 10. 13. 07:42
안동,영덕 학술답사를 다녀와서

 

 

 


들뜬마음에 준비하고 기다리던 4월12일(토)출발장소인 양재역 서초구청

후문에는 서울문화사랑의 회원께서(8명) 정확히 9시에 모두 나오셨다.

타고 갈 차량인 스타랙스는 "영덕"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띠었다.

역시 철저한 준비임을 한 눈에 알아 볼 수가 있다.

9시30분에 양재IC를 지나,죽전50#도로,마성터널,양지터널,호법을 지나

여주분기점,강천터널,죽령터널(4.6KM의 긴 터널),서안동을 지나 하회마을

입구에 13시 도착."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하며 맛자랑을 하시는 정선

생님의 입심에 눌려 우리는 안동댐에서 잡은 잉어찜을 시식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비릿한 흙냄새가 나는가 싶더니 빨간 고추장 양념에 콩나물,미

나리무침을 섞어 먹으니 과연 일미이다. 나이를 떠나서 먹는 속도가 점

점 빨라진다.호후---한 잔 하셔야죠.물론 안동소주는 첨가제이다.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학술답사인데 눌러 앉아 있을수가 있나.

어서오십시요(와겠니꺼),편하게 다녀오세요(편하게 갔다온네),잘가십시요

(잘 기시데이)를 되뇌이며 우리는 하회마을,별신굿을 접어두고 몇년전에

영국여왕이 다녀가신 봉정사를 향했다.

가면서 안동음식문화가 화제였다.안동식혜는 고추가루가 들어있고,안동칼

국수는 밀가루에 콩가루가 섞여있으며 평상시에도 먹을 수있는 헛제사밥,

안동간 고등어를 다음에는 먹어 보자는 것이었다.

봉정사(鳳停寺)는 신라 문무왕12년(627년)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

께서 창건하신 사찰이다.능인스님 도력으로 봉황새를 접어 날려서 머문곳

이라 한다.봉정사 대웅전(보물제55호)은 고려말~조선초에 만들어진 다포

계 건물이며 최근 보수중 고려벽화(부처님 후불벽화,영산회상도)가 발견

되어 국보제정 추진중이다.


고금당(보물제449호),화엄강당(보물제448호),극락전(국보제15호)은 아미

타불을 모신법당으로서 공민왕12년(1363년)에 중수 되었다는 기록으로 보

아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주심포양식의 목조건물로 판명 되었다.

안동시내를 지나 영덕을 가면서 천전(내앞)마을에서 의성김씨 청계공파

대종가와 그의 자손 제산종택,귀봉종택을 방문하였다.특히 재령이씨 갈암

종택에서는 화수회(종친회)가 있어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영덕을 지나 강구에서는 영덕대게 축제가 한창이다.불꽃축제도 곁들어진

먹거리축제여서 더욱 분위기를 자아낸다.비싼 영덕게와 북한산 홍게를 섞

어 먹는 맛은 졸깃졸깃하다. 부족한 것은 물회로 대신하여 이강주도 한잔

씩--- 내일은 일출과 무릉도원인 복숭아꽃 구경을 보기위하여 ,동해바닷

가 한적한 돌담집에 여장을 풀고 9시에 잠을 청했다.하지만 철썩이는 바

다소리에 잠을 설치고,그동안 살아온 여러가지 일들이 주마등같이 스쳐갔

다.4월13일(일)새벽6시 약속이나 한듯 부시시 깨어나 일출을 보러 해맞이

공원으로 갔다.하얀등대와 늘어진 해송사이로 일출은 영화의 한 장면이었

다.

따뜻한 커피 한잔에 몸을 녹이고,강구시내로 나와 해장국과 청명주를 마

시며 초로(草露)와같은 인생의 덧없음을 한(恨)하고 자연의 무한함에 경

이로워하였다.삼화,신애,구미리에 복숭아밭에 도화(桃花)는 요염한 자태

로 사진작가를 유혹하는 듯했다.

다시 영덕을 거쳐 축산면 영덕사를 지나 대소산 봉수대(높이278m로 왜구

의 동해안 침투를 서울로 알림)와 신돌석장군의 유적지를 보고,나라가 위

급하면 홀연히 일어난 민초( 민중의 힘)가 위대하다는 것을 느끼며 새삼

김수영님의 시,[풀]이 생각났다.[풀]은 잡초처럼 끈질기게 살아가는 민중

의 삶을 풀에 비유하여 쓴 작품이다.


풀이 눕는다./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날

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

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날이흐리고 풀

이 눕는다/발목까지/발밑까지 눕는다./바람보다 늦게 누워도/바람보다/먼

저 일어나고/바람보다 늦게 울어도/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포항에서 안강을 거쳐 양동민속촌에 도착하니 오후12시20분이었다.일제치

하에서도 한점 소홀함이 없이 굳건히 지켜온 양동마을은 선비의 의연한

모습 그대로였다.


보물411호인 무첨당으로 가는 길은 개나리와 진달래가 활짝 피었고,보물

412호인 향단으로 가는길에는 자목련이 피었다.순수하고 고고한 모습이

다.보물442호인 관가당을 뒤로하고 가면서 배고픔에 주마간선격으로 대

충 답사하니 조상님들에 죄스럽다.양동마을입구에는 실개천(기계천)이 흐

르고,그 옆에는 형성강이 흘러 곡창지대인 평야가 있어 양동마을을 지킬

수 있는 재력이 되었던 것 같다.28#영천을 지나 옥산서원을 바라보며 딱

실마을에서 메기 매운탕과 오가피주를 먹으며 선비정신이 지켜온 세월을

감지 할 수가 있었다.영천국립묘지(공사중),3사관학교를 지나 추풍령휴게

소에서 음료수 한잔을 들며 빠른 출발을 재촉하였다.신탄진을 통과하는

시간은 벌써 17시30분이었다.눈이 감기는 피곤한 몸으로 서울 양재역에

도착하니 20시 10분이었다.

1박2일의 길고도 긴 대장정의 답사는 여기서 막을 내리고자 한다.

마흔을 넘게 살며 반평생에 처음으로 감회가 다른 답사였다고 자부한다.

사노라면 불현듯 잊지 못할 안동,영덕 답사를 또한번 그리워 할 것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