信心銘(사상과 명언)/불교교리와 불교문화

[스크랩] 불교 간단히 이해하기

서울문화 2010. 5. 5. 22:37
 

<불교를 간단히 이해하기>


- 寺院, 寺刹, 伽藍 등으로 표현

절의 의미 - 절을 많이 하는 곳이다.

   -신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질 때 아도가 毛禮의 집에서 머물렀다 한다.

    毛禮는 우리말로 ‘털레의 집’에서 털→덜→절

    일본에서는 ‘데라’라고 하는데 이는 ‘털레’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 불상과 堂塔을 모시고 승려들이 거주하면서 불도를 수행하고 교법을 가르치는 기능을 가진 집

절을 지은 이유

   - 초기인 서기전 6세기에는 무소유를 이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일정한 거주지를 가지지 않아서 걸식으로 수도생활을 하면서 숲 속의 동굴이나 큰 나무아래서 좌선하거나 遊行을 통하여 불법을 전하였으나

1) 雨期에는 이러한 생활이 불가능하여 외출보다는 한 곳에 모여 정진하는 것이 필요

2) 장마철에 외출한 불교수행인들이 질퍽해진 땅 위에 나온 벌레를 밟아 죽이게 되는 경우가 있어, 不殺生에 문제

3) 교단이 비대해지는 데 따른 화합의 필요성

  安居 : 여름의 석달 동안 출가자들이 한 곳에 모여서 공동생활을 하는 것(冬安居)

절의 목적과 지역 여건에 따른 분류

1) 일반적인 절

2) 殿樓 : 넓은 형식의 누각, 동남아의 석굴 사원

3) 窟院 : 석굴 등(石窟庵, 아잔타 석굴 등)

최초의 절

  비공식적 : 373년(소수림왕)에 평양에 지은 伊弗蘭寺(이불란사)와 省門寺

  공식적 : 흥륜사(이차돈의 순교 후)

절의 위치

1) 平地伽藍型 : 초기에 도시 중심부에 지음

2) 山地伽藍型 : 심산유곡에 자리 잡음, 신라 말의 선종과 풍수지리의 영향

산지 사찰이 많은 이유 : 산악숭배(풍수지리), 護國護法(국경지역), 超世俗主義

3) 石窟伽藍型 : 기도 도량으로서의 기능

수행의 방법에 의한 분류

1) 顯敎寺刹 : 불교의 교리를 공부

2) 密敎寺刹 : 주문을 중심으로 수행

3) 參禪度量 : 禪院, 참선을 하는 곳

4) 念佛度量 : 往生極樂을 염원하는 곳

절의 기능은 수행, 교육, 포교인데 이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예배의 대상이 되는 불상이 당탑의 가장 핵심적인 구조물로 만들어짐

종파에 따른 예배의 대상인 主尊佛에 따른 명칭

華嚴宗 :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곳으로 大寂光殿

淨土宗 : 아미타불을 모시는 곳으로 極樂殿, 無量壽殿

天台宗 :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곳으로 大雄殿

절의 구성 : 七堂伽藍

1) 佛殿 : 본존불 및 보살․호법신 등을 봉안하는 사원의 중심 건물. 金堂이라고도 하는데 금당이란 인도에서는 부처를 금빛나는 분이라고 하는데서 유래

2) 講堂 : 설법이나 법요 의식을 행하던 곳

3) 僧堂 : 승려들이 좌선 정진하는 곳, 禪房이라고도 한다.

4) 廚庫 : 부엌과 창고 등 절의 살림을 경영하는 곳 (廚:부엌 주)

5) 浴室  

6) 東司 : 변소 

7) 山門 : 사원의 입구에 있는 문, 三門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는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또는 문루의 순으로 배열된다.

伽藍 - 출가한 남자(比丘)와 여자(比丘尼), 在家의 남자신도와 여자신도의 四衆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僧伽藍摩에서 유래(결혼한 승려 : 帶妻僧)

가람 배치

1) 一塔式 : 탑이 불전과 일직선으로 놓여 있는 것 - 탑이 예배의 주 대상(문경 봉암사)

2) 雙塔式 : 두 탑이 불전 앞 동서로 대칭하여 세워진 것 - 불상이 주 대상(불국사)

3) 一塔三金堂式 : 탑 하나에 금당이 셋

조선시대부터는 탑 없는 사원의 건립도 있었음

寺院 生活

불상을 중심으로 동쪽(왼쪽)은 靑山(상주하는 승려가 지냄), 서쪽(오른쪽)은 白雲(방문객이 자리 잡음)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행위 금지, 정숙 요구

절의 행정적 책임자 - 주지라 하고 주지 밑에는 삼직(총무, 고무, 재무)을 둔다.

새벽 4시와 오후 6시 30분에 조석예불

講院(절 내에 있는 교육 기관)의 생활 : 새벽 3시 기상, 4시 예불, 6시에 朝貢, 7시에서 11시까지 오전 강의,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오후 강의, 저녁 9시 취침 - 수료 연한은 10년

三寶寺刹

1) 佛寶寺刹 : 통도사(부처님의 진신사리)

2) 法寶寺刹 : 해인사(팔만대장경)

3) 僧寶寺刹 : 송광사(고려시대 이후 16국사 배출)


                                                 우리나라 불교

 

고구려 : 372년(소수림왕 2년) 전진의 순도가 불상과 불경

  영양왕 때 연개소문의 박해, 도교 중시

백제 : 384년(침류왕 1년) 동진의 마라난타)

  599년 법왕 때 왕이 살생을 금하는 영을 내려 민가에서 기르는 조류까지 놓아주게 하였고 수렵도구를 모두 불태우게 하였음

신라 : 고구려의 묵호자가 전래 후 법흥왕 527년 이차돈의 순교로 공인

  554영(진흥왕) 출가를 국법으로 인정, 진흥왕 자신이 머리를 깍았고, 왕비도 비구니가 되어 永興寺에 살았다.

  진평왕의 이름은 白淨으로서 석가모니 아버지 이름인 백정왕에서 취한 것이고, 왕비도 석가모니 어머니의 이름인 마야부인이라 하는 등 왕실의 왕명은 석가모니 가족의 이름을 그대로 땄다.

통일신라

- 전기 : 고구려, 백제의 불교문화를 보태면서 훌륭한 고승과 교학적 발전을 가져왔다. 원효와 의상, 석굴사, 불국사

- 후기 : 왕위 쟁탈전이 전개되면서 불교도 활기를 잃어갔고, 뜻있는 불교인들은 산 속 조용한 곳을 찾아 은둔생활을 하거나 해외로 떠났고, 선종이 들어와 발달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

- 후 고구려 : 궁예는 스스로를 미륵불이라 하였고, 두 아들을 청광보사, 신광보살이라 하면서 20여 권의 경을 지어 강하기도 하였다.

- 태조 왕건 : 나라의 번영을 위하여 불교 옹호에 힘쓰는 한편, 많은 사탑을 세웠다. 훈요 10조의 1조에 불법을 신봉하고 불사를 일으킬 것을 강조하였다.

이후 대다수의 왕들이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불교 행사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불교가 타락해 가면서 이에 대한 반성의 기운이 나타나는데 그것이 지눌이다.

고려 후기에 불교의 타락이 더욱 심해지자 이를 비판하는 기운이 나오고, 조선을 건국한 신진사대부들은 불교 탄압에 힘을 썼다.

조선시대

- 태조 : 불교 보호

- 태조 : 불교 탄압 본격화 - 11종의 종단을 7종으로 축소

- 세종 : 7종의 종단을 兩宗으로 통합, 승려의 도성 출입 금지

- 성종 : 사대부의 부녀자가 머리를 깎고 출가하는 것을 금지

- 연산군 : 흥덕사 및 대원각사를 폐하고 公廨로 삼음, 비구니를 宮房의 노비로 삼음

- 중종 : 僧科 폐지, 유생의 횡포(5층 사리각 방화, 종을 녹여 총토 제작, 불상을 부숴 軍器를 만듬

* 휴정, 유정 등의 활약으로 임란 후 탄압이 느슨해진 면도 있지만 근본적 변화는 없었다. 조선 후기의 불교계는 이렇다할 宗이 없는 無宗派의 교단으로 존립하였다.

현대

현대 우리나라의 불교사에 있어 가장 큰 과제는 일제시대에 문화적인 탄압의 일환책으로 일본식 불교를 신봉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帶妻僧을 장려함으로써 흩어졌던 승단을 다시 정화하는 데 있었다. 일본인들의 승려 대처화는 무뢰배의 승려들을 중심으로 크게 호응을 얻었고, 식민지정책의 비호 아래 무뢰한 破戒壞法僧(파계괴법승)들의 사원 장악이 자행되었다. 해방 후 비구와 대처승의 싸움을 그칠 날이 없었고, 절을 뺏고 뺏기는 싸움은 유혈사태까지 초래하게 되었다.

출처 : 고인돌 연구
글쓴이 : 경기지역 고인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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