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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3대 관음성지 남해 금산 보리암

서울문화 2012. 6. 12. 00:58

3대 관음성지_ 관음성지란?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근본도량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남쪽 해안의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 관세음보살의 상주처이며, 중국은 주산열도(舟山列島) 경치 좋은 섬, 보타도(補陀島)의 조음동(潮音洞)이 관음성지이다. 심지어 바다가 없는 티베트에서는 키추(Kichu) 강을 바다로 가정하고 강 유역에 있는 라사(Lhasa, 拉薩)를 보타낙가로 정하고 있다고 한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 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대표적인 관음도량은 대부분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고 기도도량에 얽힌 설화와 영험설화들을 간직하고 있다. 남해 보리암, 서해 강화 보문사, 동해의 낙산사 홍련암, 여수 향일암 등이 모두 바다에 면해 있고, 그래서 관음신앙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사찰로 손꼽히는지도 모르겠다.

 

남해 금산 보리암

   

 


우리 나라 3대 관음성지로 꼽히는 보리암이 창건된 것은 683년(신라 문무왕 3)이다. 온 산이 마치 방광(放光)하듯 빛나는 모습에 이끌려 이곳을 찾아온 원효 스님이 이 절을 짓고 <화엄경>에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곳을 보광궁(普光宮)이라 한 데서 착안 산 이름을 보광산이라 하고 절 이름을 보광사(普光寺)라고 하였다.

그 후 1660년(조선 현종 1) 현종이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기도하여 새 왕조를 열었다 하여 절을 왕실원당으로 삼고, 보리암이라 개명한 것이다. 1901년에는 낙서(樂西),신욱(信昱) 스님이, 1954년에는 동파(東波) 스님이 각각 중수하였고, 1969년에 양소황(梁素滉) 스님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 옆에는 이성계가 기도했던 자리인 ‘이씨기단(李氏祈壇)’이 있는데 매년 가을 전주 이씨 종친회에서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조선 태조 이성계와의 인연으로 이름이 바뀐 금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창건하기 전, 이성계는 전국의 이름난 성지에서 기도를 올렸다. 계룡산과 지리산에서의 기도가 응답이 없자 마지막으로 보광산을 찾아 백일기도를 시작했다.

절박한 심정이 된 그는 “나의 기원을 들어준다면 이 산을 비단으로 감싸겠다”고 산신령에게 약속했다. 기도의 영험이 있었던지 이성계는 훗날 개국해 왕이 되었다.

나라를 새로 열고 갖가지 제도를 정하고 궁을 옮기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이 기도했던 남쪽 끝의 작은 산을 생각하게 되었다. 동시에 약속도 생각났다. 그러나 상민들에게 평생 한 두번 만져볼 기회가 올까 말까 한 비단으로 산을 덮는다는 것은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그러나 약속한 것을 어쩔 수는 없었다. 답답해진 태조는 묘책을 짜내고자 신하들을 불러모았다. 신하들도 뽀족한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긴 침묵이 흘렀다. 한참 후 어느 신하(정도전<鄭道傳>이라는 설이 있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리 해도 그 산을 비단으로 직접 감싸지는 못합니다. 어명을 내리어 이제부터 산 이름을 비단 금(錦), 뫼 산(山)자로 해 금산이라 부르게 함이 옳을 줄 압니다. 뭇 사람들이 그 산을 금산이라 부르면 실제 비단을 두른 것이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과연 묘책이었다. 왕도 매우 흡족했다. 이후 보광산이란 명칭과 함께 금산이 혼용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대부분 금산이라 쓰여지고 있다.

보리암에는 현재 보광전을 비롯하여 간성각(看星閣),산신각,범종각,요사채 등의 당우가 있다. 문화재로는 큰 대나무 조각을 배경으로 좌정하고 있는 향나무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관음상 왼쪽에는 남순동자, 오른쪽에는 해상용왕이 모셔져 있다. 일설에 의하면 이 상은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후가 인도에서 모셔왔다고 한다.

보리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전각은 보광전(普光殿)이다. ‘빛(光=깨달음)을 널리 펴겠다’는 의미를 가진 보광전은 바로 관음보살의 중생구제 원력을 현실화시킨 당우다. 칠난삼독(七難三毒)에서 미혹한 중생들을 인도하겠다는 서원이 담긴 건물이다. 보광전 뒤편에 있는 간성각은 별다른 특징이 없다. 옆에 있는 산신각도 간소하기는 마찬가지다.

보광전 맞은 편 바위 끝에 있는 해수관음상은 헬리콥터로 이곳에 이운될 때 찬란한 서광을 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바로 그 옆에 있는 3층탑은 신라탑의 양식을 간직하고 있으며 상륜부에는 보주(寶珠)만이 놓여 있다. 높이는 2.3m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4호이며 원효대사가 이곳에 사찰을 세울 때 건립했다고 하지만 학자들은 고려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고 있다.

보리암의 기도는 하루 네 번, 한번 시작하면 1시간 30분동안 계속된다. 오전 3시 반과 9시, 오후 2시와 6시 반에 시작되는 기도시간에 맞춰 사찰측은 수송차량을 남해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운행한다. 장기(長期) 기도를 올리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요사채를 기도객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

출처 : 송화가족
글쓴이 : 송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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