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 성 게 - 
-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의 지혜와 방편① - [7]
初發心時便正覺 生死涅盤相共和
(초발심시변정각 생사열반상공화)
理事冥然無分別 十佛普賢大人境
(이사명연무분별 십불보현대인경)
초발심이 곧 정각이고,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닌 세계,
이와 사의 경계가 사라져 구분 없는 세계인
이사 무애 법계가 곧
모든 부처님의 과 보살의 경지라는 뜻입니다.
십불보현대인경 이라
십불이란 부처님 열분이란 뜻이 아니라
시방세계 두루에 계신 모든 부처님을 말하지요.
그러니까 위의 저 세계는 어떤 경계냐?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보현보살등 대인이 노니는 경계라는 말입니다.
仁海印三昧中 繁出如意不思義
(능인해인삼매중 번출여의부사의)
능인이란 (能仁) ‘부처님’을 말합니다.불교에서
‘대웅’이 부처님을 이야기하듯이 능인도 같은 뜻이지요.
‘해인삼매’란 해인정(海印定)이라고도 하는데,
부처님이 든 선정을 말해요. 해인삼매중이라 하면
바다에 풍랑이 쉬면 삼라만상이 모두 비치듯이
번뇌가 끊어진 부처님의 고요한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부처님의 해인삼매 가운데 번출여의가 부사의 하다는 건,
부처님의 지혜에서 뜻대로 중생을 위한
온갖 방편이 나오는데, 우리머리로는 부사의하다.
도저히 헤아릴 수 없다는 말이지요.
부처님의 지혜와 방편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 하늘 위에서 우리나라 전체를 훤하게 한눈에
내려다보는 것이 부처님의 지혜라 한다면,
이 지혜로운 분에게 사천만 국민이 각자 자기가 선 자리에서
“서울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를 묻는다면
마음껏 일러 줄 수가 있겠지요.
“당신은 동쪽으로 가고, 당신은 동북쪽으로 가시오.
그리고 당신은 서쪽으로, 또는 남쪽으로 가시오.”
묻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서울로 가는 가장 빠르고 바른 방향을 일러 줄 수가 있어요.
마치 다가 오는 온갖 것을 거울이비추어 주듯이,
억만 가지가 오면 그 억 만 가지를 다 비추는 거지요.
무한한 사물을 비추는 거울처럼 부처님도
중생의 근기 따라 무한한 설법을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
거울은 자신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밝아서 그냥 물건을 비추듯이 중생의 근기가
부처님의 광명에 그냥 비추어지기 때문이지요.
서울 가는 길은 만 명이 물으면
각자 다 다르게 가는 방향을 가르쳐 주고,
억 만 명이 물어도 마찬가지지만,
그 방향을 외우고 있다가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냥 묻는 대로 대답을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체를 내려 비추는 깨달음의 상태를
부처의 지혜, 능인해인삼매중이라 합니다.
이 지혜에서 자유자재로 방향을 일러 주는데,
이것이 방편이고 자비입니다.
중생에 대해 가엾이 여기는 그 마음에서
방편이 자유자재로 나오는데, 그것이 부사의하다.
도저히 중생의 사량 분별로는 헤아릴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백 이나 천 가지 정도의 처방을 외워서
만이나 십만 가지의 병을 치료하려는 의사를
우리는 돌팔이 의사라 하지요.
그는 고치는 병보다 못 고치는 병이 더 많습니다.
십만 가지의 병에 십만 가지의 처방을 가지고
치료를 하는 의사를 명의라 하는데,
그는 이런 병에는 어떤 처방을 내려야 하고,
저런 병에는 어떤 처방을 내려야 하는 지를
다 외워서 환자를 치료합니다.
그런데 신의는 어떠냐?
처방을 외워서 치료하는 의사가 아닙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대응해요.
환자가 ‘배가 아프다’하면 정해진
무슨 약을 먹이는 게 아니라, 환자의 상태를 봐서
물 한 그릇 먹어라, 아주까리 먹어라, 설사제 먹어라
하고 그때 그때의 상황 따라 다른 처방을 줘요.
어떤 병에는 어떤 처방이라고
외워서 치료하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돌팔이 의사는 말할 것도 없고,
명의 에게는 고치기 쉬운 병과 어려운 병이 있어요.
그러나 신의는 뭐든지 다 치료할 수 있으니까
치료하기 쉽고 어려운 병이 없습니다.
병 따라 처방이 다 다르듯이 부처님의 지혜안에는
중생을 교화하는데 어렵고 쉬운 구별이 없어요.
살인자나 수많은 보시행을 한 사람이나
성불로 이끄는데 드는 힘은 같습니다.
모든 것을 훤히 보고 있는 사람에게
수원에 있는 사람이 질문하나,
부산이나 동해에 있는 사람이 질문하나
서울 가는 방향 일러 주는 데는 힘이 안 들겠지요.
그런데 두 종류의 인연 없는 중생만은
부처님도 구제 못한다고 했어요.
어떤 중생이 구제 못할 인연인가?
자동차 운전을 못하는 사람을 예로 들어 보면,
운전 못 배우는 사람은 두 종류가 있어요.
'아이고, 못하겠다, 자신 없다.’ 면서
아예 운전석에 안 앉는 사람과 경운기 운전하면서
자전거 운전하면서 나는 안 배워도
운전 할 수 있다고 배우려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처럼 ‘아이 . 난 몰라. 나는 못해.’
하면서 물러서는 마음을 가진 사람과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증상만을 가진 사람은
부처님도 구제할 수 없다고 했어요.
정반대 같은데 두 사람의 공통점은 ‘안 듣겠다.
안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부처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가문 땅에 단비가 내려 다 자기 그릇 만큼 받아 가는데,
그릇을 거꾸로 들고 있는 사람은 비가 아무리 와도
그 귀한 물을 받을 수가 없어요.
그릇을 거꾸로 든 퇴굴심과 증상만을 가진 중생만 빼고는,
누구나 성불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을 죽이려 했던 데바닷다도,
사람을 99명이나 죽인 살인자 앙굴리말라도,
용녀까지도 성불하는 이야기가 법화경에 나옵니다.

-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의 지혜와 방편① - [7]
初發心時便正覺 生死涅盤相共和
(초발심시변정각 생사열반상공화)
理事冥然無分別 十佛普賢大人境
(이사명연무분별 십불보현대인경)
초발심이 곧 정각이고,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닌 세계,
이와 사의 경계가 사라져 구분 없는 세계인
이사 무애 법계가 곧
모든 부처님의 과 보살의 경지라는 뜻입니다.
십불보현대인경 이라
십불이란 부처님 열분이란 뜻이 아니라
시방세계 두루에 계신 모든 부처님을 말하지요.
그러니까 위의 저 세계는 어떤 경계냐?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보현보살등 대인이 노니는 경계라는 말입니다.
仁海印三昧中 繁出如意不思義
(능인해인삼매중 번출여의부사의)
능인이란 (能仁) ‘부처님’을 말합니다.불교에서
‘대웅’이 부처님을 이야기하듯이 능인도 같은 뜻이지요.
‘해인삼매’란 해인정(海印定)이라고도 하는데,
부처님이 든 선정을 말해요. 해인삼매중이라 하면
바다에 풍랑이 쉬면 삼라만상이 모두 비치듯이
번뇌가 끊어진 부처님의 고요한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부처님의 해인삼매 가운데 번출여의가 부사의 하다는 건,
부처님의 지혜에서 뜻대로 중생을 위한
온갖 방편이 나오는데, 우리머리로는 부사의하다.
도저히 헤아릴 수 없다는 말이지요.
부처님의 지혜와 방편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 하늘 위에서 우리나라 전체를 훤하게 한눈에
내려다보는 것이 부처님의 지혜라 한다면,
이 지혜로운 분에게 사천만 국민이 각자 자기가 선 자리에서
“서울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를 묻는다면
마음껏 일러 줄 수가 있겠지요.
“당신은 동쪽으로 가고, 당신은 동북쪽으로 가시오.
그리고 당신은 서쪽으로, 또는 남쪽으로 가시오.”
묻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서울로 가는 가장 빠르고 바른 방향을 일러 줄 수가 있어요.
마치 다가 오는 온갖 것을 거울이비추어 주듯이,
억만 가지가 오면 그 억 만 가지를 다 비추는 거지요.
무한한 사물을 비추는 거울처럼 부처님도
중생의 근기 따라 무한한 설법을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
거울은 자신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밝아서 그냥 물건을 비추듯이 중생의 근기가
부처님의 광명에 그냥 비추어지기 때문이지요.
서울 가는 길은 만 명이 물으면
각자 다 다르게 가는 방향을 가르쳐 주고,
억 만 명이 물어도 마찬가지지만,
그 방향을 외우고 있다가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냥 묻는 대로 대답을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체를 내려 비추는 깨달음의 상태를
부처의 지혜, 능인해인삼매중이라 합니다.
이 지혜에서 자유자재로 방향을 일러 주는데,
이것이 방편이고 자비입니다.
중생에 대해 가엾이 여기는 그 마음에서
방편이 자유자재로 나오는데, 그것이 부사의하다.
도저히 중생의 사량 분별로는 헤아릴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백 이나 천 가지 정도의 처방을 외워서
만이나 십만 가지의 병을 치료하려는 의사를
우리는 돌팔이 의사라 하지요.
그는 고치는 병보다 못 고치는 병이 더 많습니다.
십만 가지의 병에 십만 가지의 처방을 가지고
치료를 하는 의사를 명의라 하는데,
그는 이런 병에는 어떤 처방을 내려야 하고,
저런 병에는 어떤 처방을 내려야 하는 지를
다 외워서 환자를 치료합니다.
그런데 신의는 어떠냐?
처방을 외워서 치료하는 의사가 아닙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대응해요.
환자가 ‘배가 아프다’하면 정해진
무슨 약을 먹이는 게 아니라, 환자의 상태를 봐서
물 한 그릇 먹어라, 아주까리 먹어라, 설사제 먹어라
하고 그때 그때의 상황 따라 다른 처방을 줘요.
어떤 병에는 어떤 처방이라고
외워서 치료하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돌팔이 의사는 말할 것도 없고,
명의 에게는 고치기 쉬운 병과 어려운 병이 있어요.
그러나 신의는 뭐든지 다 치료할 수 있으니까
치료하기 쉽고 어려운 병이 없습니다.
병 따라 처방이 다 다르듯이 부처님의 지혜안에는
중생을 교화하는데 어렵고 쉬운 구별이 없어요.
살인자나 수많은 보시행을 한 사람이나
성불로 이끄는데 드는 힘은 같습니다.
모든 것을 훤히 보고 있는 사람에게
수원에 있는 사람이 질문하나,
부산이나 동해에 있는 사람이 질문하나
서울 가는 방향 일러 주는 데는 힘이 안 들겠지요.
그런데 두 종류의 인연 없는 중생만은
부처님도 구제 못한다고 했어요.
어떤 중생이 구제 못할 인연인가?
자동차 운전을 못하는 사람을 예로 들어 보면,
운전 못 배우는 사람은 두 종류가 있어요.
'아이고, 못하겠다, 자신 없다.’ 면서
아예 운전석에 안 앉는 사람과 경운기 운전하면서
자전거 운전하면서 나는 안 배워도
운전 할 수 있다고 배우려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처럼 ‘아이 . 난 몰라. 나는 못해.’
하면서 물러서는 마음을 가진 사람과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증상만을 가진 사람은
부처님도 구제할 수 없다고 했어요.
정반대 같은데 두 사람의 공통점은 ‘안 듣겠다.
안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부처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가문 땅에 단비가 내려 다 자기 그릇 만큼 받아 가는데,
그릇을 거꾸로 들고 있는 사람은 비가 아무리 와도
그 귀한 물을 받을 수가 없어요.
그릇을 거꾸로 든 퇴굴심과 증상만을 가진 중생만 빼고는,
누구나 성불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을 죽이려 했던 데바닷다도,
사람을 99명이나 죽인 살인자 앙굴리말라도,
용녀까지도 성불하는 이야기가 법화경에 나옵니다.